나는 왜 AI 생산성보다 맥락 이해력에 집착하게 됐나

빨라도 너무 빨라서 오히려 무서워졌다

by 속속


AI 덕분에 일이 정말 빨라졌다.

보고서는 10분이면 뚝딱, 데이터 분석도 순식간, 심지어 코드까지 자동으로 짜준다. 예전에 하루 종일 걸렸던 일이 지금은 점심 먹기 전에 끝난다. 처음엔 신세계였다.


'이거 완전 혁명 아냐?'

그런데 요즘 들어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데, 문득 '어? 나 지금 어디 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빠르긴 빠른데, 방향이 맞나 싶어서.

빠른 게 능사가 아니더라.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고객 이탈률이 갑자기 올라가서 원인을 분석해달라고 했다. AI는 완벽한 분석을 내놨다. 연령대별, 지역별, 사용 패턴별로 다 정리해서.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숫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평소 충성도 높던 고객들이 갑자기 떠나고 있었거든.

알고 보니 3개월 전에 있었던 작은 시스템 오류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금방 해결됐지만, 그때 불편을 겪었던 고객들이 서서히 마음을 돌리고 있던 거였다. 데이터상으론 연관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원인을 직접 찾아 들여다 보니 알게 됐다.

AI가 놓친 건 바로 '맥락'이었다.


그때부터 의식하기 시작했다. AI가 주는 답이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맥락 없이는 소용없다는 걸.

예를 들어 매출이 갑자기 떨어졌다고 하자. AI는 계절성, 경쟁사 프로모션, 시장 트렌드 변화 등을 분석해준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이 '우리 회사 주차장 공사 때문에 접근성이 나빠져서'라면? 이런 건 데이터에 안 나온다.


때론 느리게 가는 게 옳을 때가 있다


또 다른 예로 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업무 환경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90%가 나왔다고 하자. AI는 이걸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근에 구조조정 소문이 돌아서 다들 솔직하게 답변하기 꺼려했을 수도 있다. 설문조사 시기와 회사 내부 상황을 함께 봐야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요즘 깨닫는 건, 정말 중요한 정보는 데이터와 데이터 사이에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두 부서가 같은 프로젝트를 두고 다른 의견을 낼 때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기술적 검토가 더 필요하다 vs 빨리 런칭해야 한다는 대립으로 보인다. AI는 이걸 단순한 의견 차이로 분석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번 프로젝트에서 한 부서가 책임을 떠안았던 경험, 연말 평가를 앞둔 부담감, 새로 온 팀장의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정치학은 회의록이나 이메일에 기록되지 않는다.

맥락을 이해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그 분야에서 오래 일해봐야 한다. 실수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고, 사람들과 부딪혀봐야 한다.

AI는 데이터로 학습하지만, 사람은 경험으로 학습한다. 그 차이가 크다.

나도 몇 년 해보니까 안다. 같은 데이터라도 계절에 따라, 경쟁사 상황에 따라, 내부 분위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는 걸.

이런 건 책에도 없고, 데이터에도 없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체득하는 거다.

AI가 빨라질수록, 나는 오히려 천천히 가려고 한다.

잠깐, 이게 우리 상황에 맞나?

진짜 중요한 게 뭐지?

놓치고 있는 건 없나?

이런 질문들을 계속 던진다. AI가 준 답을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맥락에 맞게 재해석한다.

생산성도 중요하지만,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빨라도 엉뚱한 곳으로 가면 소용없다.

결국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AI는 도구다. 좋은 도구지만 어디까지나 도구다.

진짜 중요한 건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 어떤 맥락에서 쓰느냐다. 그리고 그걸 판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요즘 AI 관련 글들을 보면 생산성 향상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이 툴 쓰면 몇 배 빨라진다

이 방법으로 효율 올린다

이런 식으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빠르기만 하면 뭐하나, 방향이 틀렸는데.

결국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판단력이다. 맥락을 읽고, 상황을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

이걸 놓치면 AI도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나는 맥락 이해력에 집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