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사찰 호압사(虎壓寺)

산행하며 배운다

by 롱혼 원명호

산행중 만난 비보사찰 호압사(虎壓寺) 비보사찰 호압사 서울 금천구 시흥2동 234에 있으며 사당에서 출발하는 서울 둘레길 5코스 입장에서 보면 호암산을 타고 내려 거의 마지막에 힘이 들어 헐떡 일 때 나오는 사찰이다. 비보사찰[裨補寺刹]이란 고려 시대, 이름난 곳이나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을 돕는다는 도참설과 불교 신앙에 따라 세운 절을 말하는데 호압사(虎壓寺)는 이 비보사찰이라는 독특한 창건 유래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개국과 더불어 한양에 궁궐을 건립될 때 풍수적으로 가장 위협이 되는 관악산의 불기운과 삼성산(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조에서는 삼성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자리에 절을 창건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호압사이며 이는 조선왕조 1391년 태조 2년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원래 사찰은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금강경에서 제일법회인유분에 보면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

“그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드시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걸식하시었다."

즉 당시에는 탁발에 의존했기에 사찰이 마을에서 먼 곳에 있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세속에서 포교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사찰이 도시 가까이 부담 없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헌데 어찌 우리나라 사찰들의 대부분은 산속에 위치해 있게 되었는가 우리나라 사찰이 대부분 산속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오랫동안 뿌리내린 산악 신앙과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 의지로 그리고 해탈과 도를 구하는 불교 가르침으로 마지막으로 신라시대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 즉 산천 비보설로 인해 산속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호압사가 마지막에 해당되는 비보사찰인 것이다. 지금은 도시가 형성되어 둘레길 근처로 내려앉았지만 옛날에는 첩첩산중에 있었으리라 이름도 특이하다. 글자 그대로 호압사(虎壓寺) 호랑이를 누른다는 사찰이다.


관악산을 넘고 호암산을 이어 5시간을 걸어오다 보면 산 중턱부터 사람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비탈이 나오더니 아래로 작게 웅크려 앉은 작은 사찰이 보였다. 산 중턱부터 등산객들이 군데군데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어 마치 사찰이 무대라면 둥근 관객석에 앉아있는 신기한 분위기였다. 살며시 비탈을 타고 내려가다 보니 사찰 뒷간에 내 팽개쳐 있듯 구석에 세워있는 호랑이 모형이 제일 먼저 보여 호랑이와 연관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맞았다. 이 사찰이 호랑이 꼬리를 누르고 있다는 호압사(虎壓寺)이다.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호암산의 호랑이 등을 타고 내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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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들어서자마자 마당 한가운데 500년이 되었다는 둘레가 4.6m나 되는 느티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 역사와 신뢰의 신비로움에 영험함을 불러주고 있어 부처님께 절을 안 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비나이다 비나이다 중얼거리게 된다. 그 주변으로는 범종과 큰북이 있는 루(樓)가 있는데 그 옆 평상에는 집 안마당 인양 등산객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잠들을 자고 있어 그것이 더 신기했다. 호압사는 사람을 다 포용해주는 묘한 정감 있는 사찰 같다. 우리도 함께 고마운 호압사 품에 널브러져 볼려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질문을 한다. 사물에 대해서 아느냐고 묻는다. 사물(四物)이라 함에 사물놀이만 바로 연상되었던 나로서는 사물이라면 괭가리, 징, 장구, 북 아닌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물이라 함은 범종(鐘)·목어·운판·법고가 있는데. 범종은 사후 인간, 목어는 물속, 운판은 하늘, 법고는 세속 축생을 칭한다고 말해준다.


"지금 사전을 다시 찾아보니 원래 사물(四物)이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나와 있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하지만 호압사에는 분명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이 있었다. 사실 운판을 처음 본다. 아니 봤겠지만 뭔지 몰랐을 게다 두꺼운 철판에 구름 형상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신기해 호암사 앞마당에 있는 사물을 자세히 보러 다시 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동한다. 그랬던가 이제는 비보사찰 호압사가 서울 둘레길의 등산객들의 안위와 안녕을 보살펴주며 휴식을 도와주는 우리 곁으로 와있어 호압사(虎壓寺)가 친근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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