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젠 웬만한 외풍에도 끄덕 없다
휴일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이리저리 쇼핑을 다니는데 갑자기 불쑥 카트하나가 들어오더니 통로 가운데 떡 하니 세우고는 느긋하게 자기 볼일을 본다.
이게 뭐지?
당황한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가운데 서있는 카트를 옆으로 비켜 밀어놓고는 내 갈 길을 간다. 곧이어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잘못을 이야기해 주고 본인 보고 치우라고 해야지 왜 당신이 그렇게 하냐고 한다.
글쎄 내가 왜 그렇게 한 거지?
이젠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간다. 아니 그러려고 한다.
나름 살아오면서 여러 부류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터득한 지혜이다. 더욱이 글을 쓰면서는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욱 그렇게 하게 된다.
‘사람은 생각 하나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신평 변호사가 어떤 말을 설명하려고 한 말 중에 있던데 난 이 말 자체가 개인적으로 받는 느낌이 크다. 실제 살면서 수많이 경험을 해 보는 것 같다.
'벽암록'에 보면 어떤 수행자가 향림 선사에게 물었다.
‘달마 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피곤하구나'
그렇게 앉아있으면 팔다리만 쑤시지 무슨 소용이냐 하신다. 청정한 본심을 가르치려 오신 건데 말로써 다 전할 수 없어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통하려는데 간단하게 이게 내 마음이라 말을 하면 그 낱말만 가지고 내 마음이라 하고 끝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화두로 삼서근이라는 둥 똥막대 기라는 둥, 네 밑을 봐라는둥, 뜰앞에 잣나무로다둥 마음을 찾는 의심을 유도하는 방편을 사용했다 한다.
생각만 바꾸면 생각을 없애면 본질을 찿게되어 잘될 텐데 지나친 자기주장, 지나친 옳음의 오류, 가치관의 고정관념, 예민한 주변 의식 때문에 문제가 되고 고착되어 힘들어했다. 하지만 나도 글을 쓰게 되면서 많이 성숙해지고 있는것 같다.
살다 보니 사람들은 애초에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고 나니 사소한 자존심으로 이기려고 대드는 것보다 나와의 대화로 본질로 나가는 것이 더 대승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준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사소함에 신경이 쓰일 때가 있기에 웃으며 그저 거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이 고통스러운 밑바닥이든 강한 외풍에 흔들리고 있든 무슨 걱정 이겠는가 애초에 나에게 사람들은 본질적인 관심도 없는데 그래서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고 내가 그 기준을 잡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 일은 어치피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이젠 웬만한 외풍에도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