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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Mar 08. 2023

삶은 수행 중.

내가 나에게 글을 쓰는 이유는 본심을 깨우치려 한다

가끔 차 안에서 운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빙의가 된 듯 중얼거리거나 소리도 지를 때가 있어 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예전 어느 한 지점이 생각이 나서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부끄러웠던 또는 화가 났던 상황에서 하지 못한 말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건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다가도 어쩌다 그 생각에 깊이 빠져 들었을 때 나오는 표현이기에 후회나 배움의 교훈으로 남기려 내버려 두었다.


기억과 함께 있는 잠재 무의식 어느 부분에 깊게 남겨져 있는 아쉬운 상황들과 상처들이 떠오르며 안타까워한 것이다. 그때 매번 올바른 선택, 올바른 대처를 했다면 무슨 아쉬움이 남겠으며 후회란 말조차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사람인 지라 때론 이것들에 대해 해소와 함께 뉘우침으로 놓아 잊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나에게 글을 쓰는 이유


기억 속의 후회와 아쉬움을 상상으로 해소하려면 오리려 더 각인이 되어 더 정확히 남게 된다. 대신 이것을 글로서 배출하며 고쳐 나가거나 배움의 여지로 기록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카페에서 우연히 '카툰으로 읽는 벽암록'이라는 언뜻 가벼운? 책이 있어 펼쳤는데 거기서 난데없이 

"내가 옳다는 생각 몽둥이로 후려쳐" 

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찍혀 나온다. 지금 나를 보고 하는 말이다. 후끈 달아오른다.


내가 잠재의식 속에 지니고 있었던 후회 또는 자랑, 부끄러움의 생각이라는 것이 그때 그 상황의 뜻이나 이유를 제대로 파악을 하고 대처했을까 아니면 나의 자존심과 자만에서 바라본 쓸데없는 판단이었을까  "내가 옳다는 생각 몽둥이로 후려쳐"이젠 그 생각들을 이젠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의 글은 지금의 일상의 삶과 같이하면서 배우고 후회하며 또 태워 버리면서 살아가는 삶을 써 나가는 것이 최고라는 것이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매일 사는 이야기를 글을 쓰고 또 한편으로는 버리려고 한다.


그것이 짧은 식견의 오역일지라도 그렇게 일깨워준 '벽암록'이 궁금하였다. 

중국 당나라 이후 선승들의 선문답을 100개 가려 설두 중현스님이 쓰고 원오 극근 스님이 수시와 착어, 평창을 달아 만든 책이 벽암록 이란다. 지금부터 1,000년 전 사람들의 선문답인데 그때부터 1,000년 동안 계속 회자되고 있으니 사람들이란 마음을 고쳐 잡기가 이렇게나 힘든 모양이다. 가르치고 또 가르쳤는데도 1,000년을 했는데도 다시 또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웃음이 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수행이라는 것에 확신이 든다.


"내가 옳다는 생각 몽둥이로 후려쳐"

생각만 바꾸면 생각을 없애면 잘되었을 텐데 지나친 자기주장, 지나친 옳음의 오류, 가치관의 고정관념 등 때문에 문제가 되고 고착이 되어 힘들어했다. 


어떤 수행자가 향림 선사에게 물었다. 

‘달마 대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피곤하구나” 

그렇게 앉아있으면 팔다리만 쑤시지 무슨 소용이냐 하신다.


벽암록에 나오는 글로서 청정한 본심을 가르치려 달마대사 께서 오신 건데 말로써 전할 수 없는 이심전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간단하게 이게 내 마음이라 말을 하면 그 낱말만 가지고 내 마음이라 하고 끝내 버리고 만다. 그래서 화두로 삼서근이라는 둥 똥막대 기라는 둥, 네 밑을 봐라는 둥, 뜰앞에 잣나무로다 등 마음을 찾게 의심을 유도하는 방편을 사용했다 한다.


이것이 어리석은 나에게 글을 쓰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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