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롱혼 Mar 07. 2023

나와의 재회

내 것을 밖에서 찾고 있었다

딱~,  딱,  딱~,

리듬을 타는 탁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단 한순간도 낭비하기 싫다는 듯 공만 노려보고는 힘껏 장작(공)을 패고 있다. 골프실외연습장 타석에 오르기만 하면 주변에 눈길도 한번 안 주고 그렇게 열심히 내가 그런다는 말이다. 힘도 들고 팔도 저려오는데도 

왜 이러는 거지?

운동을 하려면 헬스장에 가면 더 좋은데 하면서도 다음 주면 어김없이 또다시 가방을 메고는 달려온다. 그것은 지금 취미를 만들고 있는 중이니까, 취미를 만들다니 어이없다. 그런데 맞다. 그때 그랬다.




당시 회사일로 외국인을 가이드할 일이 생겼다. 회사에 기술 엔지니어들이 방문했는데 그중 한 명을 내가 안내해야 했다. 그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바이크에 몰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꾸 나를 보고 타 본 적도 없는 바이크 이야기만 하더니 내가 계속 동문서답을 하자 나보고 취미가 뭐냐고 묻는다. 갑자기?

내 취미가 뭐더라?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 취미를 모르겠다. 나를 잊고 오로지 회사를 전부로 알고 있었으니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술 마시는 것도 취미라 할 수 있으려나 도통 내 취미를 모르겠다. 이 일이 있은 후 걱정이 되어 나름 논리적 판단으로 취미 만드는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제일 편하고 재미있었을 때가 뭐였더라

술 마실 때?

사우나에 갔을 때?

낮잠 잘 때?

TV, 영화는 분명 아니야 그래 그럼 내 취미는 사우나다. 사우나 갔을 때가 편하고 좋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취미를 사우나라 정했더니 다들 개그 하냐 하며 웃는다. 이것 참, 그들이 가진 취미 메뉴판에는 사우나가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오로지 회사를 위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뿐 나를 잊고 지내며 내면과의 대화는 더더욱 전혀 없었다.


취미를 만들자


스크린 골프가 막 생겨 나기 시작하며 하나 둘 골프를 한다고 나설 때라 멋있어 보였다. 기왕에 취미를 만들려면 폼생폼사 골프로 하기로 하고 채도 마련하여 취미 만들기에 돌입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통했다. 아마 그들이 가진 취미 메뉴판 제일 위에 골프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후 누가 취미가 뭐냐고 하면 당연히 골프라 하였고 다들 인정하며 끄덕였다. 누가 봐도 괜찮고 좋아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가 지금껏 내 취미로 명함을 내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나가는 골프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운동 중 하나로 필드의 상쾌함을 얻을 뿐 꾸준한 즐거움이나 감동은 주지는 못했다.


취미라면 일상적인 업무나 의무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관심이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말하는데 억지로 만들어진 남에게 보여주는 취미는 그저  상상 속의 취미일 뿐인 것이다. 정확히는 내부의 나와 합의가 안된 상태에서 외부의 내가 단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합의된 취미가 진짜다

그런데 요즈음 내면의 생각들을 탐구하면서 느끼다 보니 나는 산책을 하거나 사색할 때 그리고 글을 쓸 때 무척 행복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 막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학생 때부터 문학소년이니 어쩌고 할 때부터 그래왔던 것이다. 어릴 적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의 추억을 말할 때면 이것부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강해지고 싶은 욕심에 내성적인 성격의 행동에 불만을 갖고 있던 터라 나의 내면의 또 다른 나를 일부러 잊고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그 정체성이 올라오더니 점점 편해지고 익숙해져 갔다. 아마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내가 서로 통하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더욱이 브런치에 입성을 하고 나서부터는 사색에 따른 정리된 글쓰기가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내 취미는 원래부터 내 몸 안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여주기식으로 외부에서만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취미는 나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야 하는데 바깥에서 보여준 타인들의 취미 메뉴판에서만 골랐던 것이다. 


회사라는, 경영자라는 세뇌된 가두리 환경에서 왜, 내가 중심이 못되고 늘 타인이 중심 된 곳에 살았었는지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안타깝다. 하물며 취미까지. 그러나 지금이라 다행이다.


브런치에서 일깨워준 글쓰기에 빠져 들면서 내면에 대한 관심과 나를 중심에 놓는 사고에 익숙해지며 나와 많이 친해지고 있어서 이다.


'취미가 뭐야?'

'응. 내 취미는 글쓰기야'  

자랑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쓸데없는 참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