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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Nov 25. 2022

100세 시대에 속지 말자

드디어 나를 내려놓았다

희망은 통계에 기초하지 않는다

100세 시대라고 떠드는 세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희망들이 우리의 귓속을 날아다니며 속삭이고 있는가 그대 들은 특별하다고 경험도 많으니 곧 찾아오는 기회가 100세 시대 아무것도 안 해도 늘 여유 있고 해외여행 다니며 즐기는 인생이라며 속삭이는 덕분에 기세가 등등한 쓸데없는 자만이 거만한 자존감이 그리고 벌어 두었다는 알량한 저금통이 시간을 멀리하며 희망만 쫓고 있다. 아직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나를 찾을 거라며 그곳 사장이 예전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며 보증도 없는 비천한 믿음을 희망의 근원으로 삼아 점점 뻔뻔해져만 가고 있는 것이다.


냉정한 현실

모임에 나가면 왕년을 이야기하며 세상을 들었다 놓을 것 같은 허세로 쓸쓸한 귀갓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다 안다 왜 그러는지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를 인정할 용기도 없고 사실 아니라고 아직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희망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알량하고 거만했던 체면과 타성들이 짓눌러 붙어 온갖 훼방을 한다. 뭐 이렇게 까지 할 것 없잖아, 아직 명색이 사장인데 뭐가 걱정이야 다음 주 골프 모임이나 걱정하셔 생각의 여유가 너무 한가하다. 사실 현실은 생각할 겨를도 없는데 말이다.


내려놓아야 한다

체면과 그동안의 관성을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현실에 몰입할 모티브가 필요했다. 고급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우리 분야에서는 모든 일의 기초단계가 기능사의 일이다, 내려놓는 것이다. 자격증이 필요하던 필요 없던 상관없이 나를 내려놓는 마음을 위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창피도 하였지만 독한 마음을 가지는 차원으로 기능사 자격을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려놓기를 실제 보여주는 것이고 몸이 정신을 이겨내는 것이다. 나를 찾는 여정에서 그동안의 관성을 탈피하기가 어렵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을 내려놓음 으로써 가면의 탈피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제야 진정 내가 누군지 그 속을 들여다볼 용기가 조금씩 생겨난다.


창피 속의 도전

어느 겨울이 끄트머리를 지날 무렵 낯선 버섯종균 기능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실기훈련 주말반을 운영한다는 대방동에 있는 어느 학원을 알게 되었다. 이론이야 독학을 한다고 해도 실기는 어디선가 배워야 하니 용기를 내었다. 주말반이란 매력에 앞뒤 안 보고 선택을 한 것을 나중에 잠시 후회하기도 했지만 토요일 오전 대방동 중국 상가들이 즐비한 시장 골목을 신기해하며 찾아가 씩씩하게 으슥한 건물 좁은 계단에 오르다 보니 중국말이 많이 들려 아치 싶어 다시 내려와 간판을 본다. 맞는데 중얼거리며 다시 오르다 보니 누군가 불쑥 이리 오세요 하며 안내를 하며 동포세요 라는 물음에 어리둥절 하자 주말반은 중국동포 F4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만 운영한단다. 예약까지 하고 시간 내어 왔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요령껏 배울 테니 시켜달라고 원장님인지 수강생인지 하여튼 큰소리로 통제하고 계신 분께 말씀드렸더니 하라고 하신다. 다행이다. 중국동포들과 한다니 기왕에 내려놓을 것 더 밑에까지 가보자 라는 오기가 생겼다. 그 동포분들과는 점심도 같이 먹으며 교육을 받다 보니 조금 편해지긴 해도 아직 정식 인사 한번 안 하고 있었고 그냥 창피함이 떠나질 않는다. 기술보다는 시험을 위한 학원이다 보니 순서와 방법이 철저한 공식에 기한다. 4회 정도 꿀 먹은 벙어리로 교육을 받으니 어느 정도 숙달되어 갔다. 


 드디어 나를 내려놓았다

감격했다, 합격하여 버섯종균 기능사 자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왜 이렇게 하는지, 명색이 아직 사장인데 하는 자존심을 정말 내려놓지 못하고 소위 말해 갑의 물을 완전히 빼지 못하고 있었다. 큰맘 먹고 기왕에 시작한 것 나를 내려놓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몰입해 보자 마음먹고 분기별로 하나씩 도전하기로 하였다. 어려운 실기로 산에서 직접 전기톱을 사용하며 몸으로 부딪히는 산림 기능사를 시작으로 도면 그리기가 중요한 조경 기능사는 한여름 방바닥에서 그리고도 흙 종류를 감별해 보는 유기농기능사까지 도전에 나섰다. 우여곡절 힘든 과정을 겪으며 심지어 회사 사장 사무실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철사로 로프매듭을 감는 연습도 하며 2년여 만에 모두 4개의 기능사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다.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고 인사치레가 요란 하지만 바닥까지 마음을 다 내려놓고 탈피한 나는 고요하였다. 이제부터 진짜 내가 원하는 나의 일을 찾아 나서는 지금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은 태초 이래 내려오는 진리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매번 혹시나 하고 다시 현실을 따라가곤 했는데 이제 그 길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하고 싶은 나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어릴 적부터 글을 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시골 아버님의 권유에 포기를 하였지만 이제는 나의 길로 나섰다.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디지털노매드라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이제 브런치 작가까지 되니 더욱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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