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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Nov 20. 2022

나에게도 보호자가 있었다

스스로 관리하는 기적

보호자님, 보호자님 

분명 나를 찾는 소리다. 내가 보호자다.

시골에 계시는 아버님께서 평소 눈이 불편하셨는데 올 여름 무더위를 지나며 더욱 악화되어 서울 모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다. 지금까지 아버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보호자였었는데 이제는 내가 지켜드리는 보호자로 부름을 받고 있다. 보호자란 어떤 것 또는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보호자가 있다는 것 


보호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마음이 편한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미성년까지 부모가 보호자다. 병원에 입원 환자인 경우 가족이나 지인이 보호자다. 가족은 가장이 보호자다. 하지만 나의 보호자는 나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은 기러기 가족이니까

(기러기 가족이란 자녀 교육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 기러기가족·국제적 비동거 가장·신글로벌 별거 가족이라고 국어사전‘훈민정음’과 국립국어원 ‘2002년 신어‘에도 올라있는 정식 단어다.)


그 기러기 가족은 국내에서 홀로 있는 아빠나 외국에서 공부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상태는 비슷할 것이다. 다만 한쪽은 서로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은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차이가 있다. 성인이 되면 다들 일상의 관리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지만 챙겨주는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삶에 의욕이 넘치는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



스스로 관리받기 


기러기로 홀로 살기 시작한 초기에는 6개월이 넘도록 밤에 불을 끄고 자지를 못할 정도로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어서 늘 피곤해져만 갔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 혼자서라도 잘살아 보자며 거창한 목표를 정하고 학창 시절 방학때 해오던 것과 같은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다. 둥근 시계를 그리고 휙휙 선을 그어가며 기상부터 식사시간 꼭 챙기고 휴식 집어놓고 취침 시간 넣어 떡하니 벽에 붙이고 끝냈는데 일주일도 못 넘기고 이걸 할 수는 있을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하며 일상과 타협하려 들고 있었다. 아직 본격 시작도 안 했는데 스스로의 무게에 포기를 하게 되며 전보다 더한 방탕한 삶 위에 놓였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려고 단식을 하다 포기를 하면서 폭식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았다.


갈등과 자책의 시간 속에 몇날을 멀뚱 거리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자리 잡혀있던 잡동사니를 홧김에 몽땅 쓸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만난 깨끗해진 텅 빈 책상은 아무 계획 없는 나를 안아주면서 위로와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잡동사니를 버리듯 내 머릿속의 생각을 다 버리고 딱 하나만 실천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아침 5시 기상을 선택하고는 아무 이유 없이 목적 없이 무조건 해보기로 했다. 만일 지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홀로 살며 중심을 잡고 살아갈 자신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된 아침 5시 기상은 의지도 강했을 뿐 아니라 목표가 단순하다 보니 의외로 잘 지켜지면서 뿌듯한 만족의 기운마저 올라왔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마치 큰 것을 수행한 것 같은 느낌, 아마 마음을 비워 아무 계획이 없으니 그 조그만 성취가 만족을 주는 것 같다. 이 단순함이 몸에 체득되어 하나의 나의 생활 루틴으로 자리 잡히고 나자 거기에 또 다른 하나를 추가하는 것은 쉬워졌다. 그래서 기상을 하면 동네 공원을 한 시간 걷는 운동의 루틴이 자연스럽게 이어갔고 또 명상, 글쓰기 등 하나씩 더하여 가다 보니 전체가 한 세트로 묶여 출근 전까지의 생활 루틴에 그저 눈을 뜨면 몸이 이끄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의 보호자들이 새로운 업을 만들어 주었다 


이때까지도 이 작은 행동의 의미를 잘 몰랐다.

아침의 루틴이 퇴근 후 저녁의 루틴도 불러왔다. 헬스와 강의 시청 자꾸 하나씩 추가되어 가는 반면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잔소리도 하며 질책 해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꾸준하게 계속해 나가기가 혼자 있는 나로서는 매우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일상을 블로그에 올려 만천하에 공개를 해버렸다. 이 사람이 이렇게 살겠다네요 하루라도 빠트리면 혼네 주세요 라는 의미이었다. 이제는 SNS에서 나를 지켜보는 보호자와 관리자들이 많이 있다보니 책임감도 더욱 커지고 의욕도 솟구치면서 편한 마음에 생활의 루틴이 꾸준하게 잘 이어져 갔다. 그리고 기적이 생겼다. 목적 없이한 행동의 꾸준함이 나도 모르게 어릴 적 꿈이었던 작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로 그리로 끌고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늘 거창한 계획과 목표 속에 그 무게감에 짓눌려 힘들어한다. 혼자 있는 지금 이 멍함이 기회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작은 행동 하나를 반복해 꾸준한 해 보는 것이다. 나중에 이것이 주는 힘은 실로 엄청나다. 의지가 약하다면 관리자나 보호자를 스스로 만드는 것도 잊지 말고 하다 보면 어느새 의미 없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의미 있는 업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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