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접수대는 왜 바쁜가

성의만큼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꼼꼼한 예의라고 보인다

by 롱혼 원명호

지난 금요일 저녁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교민으로 사시는 사촌 형님이 진작에 몇 번의 통화를 하면서 직접 부탁하기에 조카 결혼식 축의금 접수대에 앉게 되었다. 대략 이십여 년 만에 앉아 본 것 같다. 아마 사촌형님 입장에서 기억나는 동생에게 부탁하기가 편했으리라 본다. 덕분에 환갑의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해 보며 그동안 궁금했던 요즈음 축의금들의 변화와 찾아오신 분들의 관심사를 알 수 있었고 혼주를 대신해 인사를 드리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미리 사전에 도착하여 방명록과 펜들을 챙기고 자리를 잡으니 예식장 관리자가 와서 주의 사항을 설명해 준다. 식권 수량과 성인과 아이들 구분해 달라는 부탁과 그리고 부족할 시 대처요령과 정산 요령등을 한참 듣고 나니 경기장에 나서기 전 선수와 같은 어떤 묘한 긴장감이 잠시 감돌았다. 같이 앉게 된 사촌 동생에게 접수와 식권 배분을 맡기고 나는 앉아서 봉투정리를 하겠다고 서로의 역할을 정하고 나니 슬슬 성급하신 손님들이 오신다. 그런데 식권이 없다. 예식장에서는 혼주에게 주었다 하고 혼주는 없다 하고 큰일이다. 시작부터 혼란이 왔다. 결국 혼주가 직접 신부에게 뛰어 들어가 어디선가 찾아와서 다행히 침착한 척하게 되었다.


하객들이 본격 몰려 들어오기 시작하니 바쁘다. 인사드리랴, 봉투에 번호를 매기며 이름을 쓰랴, 그런데 처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간혹 봉투를 내민 하객께서 접수장에 번호와 이름을 쓸 때까지 안 가고 기다리시기에 지켜보시기에 얼른 적어 드리느라 점점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정확히 쓰라고 굳이 이름을 불러주며 확인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리고 이름 옆에 동창 이라든가 상호명 또는 전 직장명등을 적어 달라는 요구사항도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봉투정리는 하객 안내와는 상관없이 조용히 고개 숙이고 나 혼자 천천히 하면 되는 줄 알고 맡았는데 이런 직접 요구사항이 있을 줄은 생각을 못했었다. 차라리 내가 인사드리고 식권을 나눠 준다고 할걸 잠시 후회를 하기도 했다. 거기에다 어떤 분들은 아예 접수대에 오셔서 봉투를 만드시는 분들도 계신다. 옆에 탁자를 안내해 드려도 요지부동. 다급한 마음은 불안해 하지만 접수대를 맡은 만큼 친절과 예의가 넘쳐야 하기에 뒷사람들을 보며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거기에다 친척 삼촌 어른들이 오셔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반가워하면서도 네가 왜 거기 앉아 있느냐며 의아해하시고는 말을 거는 통에 더 혼란스러웠다. 젊은 조카들도 많은데 아마 사촌형님이 잘 모르니 부탁하기가 힘들었다는 평까지 하고 나서야 자리를 물리셨다. 또 어떤 젊은 아가씨들이 간혹 다가와서 인사를 하며 아는 체를 하기에 애매하게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솔직히 지금도 누군지 모르겠다. 아마 친척 조카들 같은데 한참 자라는 사람들은 한 해만 지나도 모르는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짧은 광풍이 몰아치고 예식이 시작되자 썰물처럼 사람들과 함께 소란은 사라지고 조용한 평화가 오자 그제야 봉투와 금액 그리고 번호 확인을 다시 확인하였다. 더러는 봉투에 두툼한 편지만 들어있는 것도 있고 또 여러 겹의 테이핑으로 개봉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있다. 이런 건 어떻게 처리하지 잠시고민을 하다 어쨌든 성의가 가득한 여러 색깔의 봉투정리를 마무리했다. 사전에 시간이 없으면 봉투채 넘겨드리기로 혼주와 이야기를 하였기에 동생에게 마무리를 넘겨주고는 그제야 친척 분들께 늦은 인사를 다니며 즐거운 결혼식 뒤풀이를 보냈다.


그동안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면서 무리를 지어 혼주와 인사를 나누고는 접수대에 봉투를 드리 밀고는 방명록도 작성 안 하고 식당으로 몰려 갔었으나 그게 아니었다. 앞으로는 방명록도 꼭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성의만큼 자신을 내세우는 것도 꼼꼼한 예의라고 오늘 배웠다.


이제는 접수대에 앉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즐거운 경험을 하였기에 글을 써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마음대로 골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