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간지럽지만
이번주는 술을 안 마십니다! 아니 절대 안 먹겠습니다!
회사에서 회의 시간에 대놓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혹시 모를 접대가 잡혔다던가 회사 모임이 있으면 이번주는 피하라는 의미로 말을 한 것이다.
사실 이번주는 내가 약을 먹기 때문이다.
며칠 전 사장 모임이 있어 나갔다가 마침 시간이 남았기에 근처를 걸어 다니다 '피부과 병원'이 보였다. 번뜩 머리를 스친다. 언제부터인지 엄지발톱이 두꺼워지며 색깔이 변하던데 미루던 참에 혹시나 하면서 병원으로 들어갔다. 젊으신 의사 선생님께서 무척이나 활달하시다. 굴절렌즈를 끼고 이리저리 보시더니
'발톱 무좀입니다'
'이거 심해지면 양말도 못 신고 걷기도 힘들어집니다'
'약이 독해서 더 나이 드셔서 오시면 우리 병원에서는 받지도 않습니다'
대수롭지도 않게 생각하고 시간이 있어 편하게 들어갔는데 무서운 소리를 하신다. 겁을 먹고는 '네 네' 하며 약을 받아왔다. 절대 약 먹는 기간에는 음주를 하지 말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그래서 이번주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한 것이다. 대놓고 발톱무좀 운운 할 수가 없어 그냥 이유 없이 강하게 약속 거부의 말을 했으니 알아서들 판단하리라 그런데
'사장님께서 이번달 수주 실적이 저조하여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다'
'아니 S사 납품 장비 일정을 못 맞추신 것을 어떻게 아신 거야, 잔업을 하더라도 맞추라는 이야기쟎아'
나의 단호한 단주의 이야기는 각자의 약점에 기반을 둔 해석으로 퍼지며 그 이야기를 점심 먹는데 조심스럽게 관리부장이 말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서들 잘하고 있다며 걱정 않으셔도 된단다. 나는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밥만 먹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강한 언어이지만 지금은 정말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 발톱 무좀이 했다.
어쩌다 침묵에 입은 간지럽지만 이 타이밍은 조용히 있어야겠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