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백화점 나들이에 나섰다. 별일 없는 듯 있는 듯 따라다니며 발품을 팔고 다니다. 밥 먹으러 가자는 반가운 소리에 느릿느릿 꽁무니를 쫓아 식당층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는데 마침 뒤에 오는 사람이 있어 잠시 붙잡고 있었더니 그냥 훅 들어간다.
'엉 뭐지? 안 붙잡는데'
손을 놓으려니 따라 들어오는 아이들이 장난치며 들어오길래 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도어맨 같은 순간이다. 에라 모르겠다 손을 놓고 나서려는데 마침 들어서던 할머님께서
'땡큐~' 하신다.
다행이다. 감정이 녹아든다.
감사 표현에 감정이 녹는다
우리는 검증할 수 없지만 모두들 젊잖은 양반의 후손이라고 믿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의 감사에도 속으로는 인지하면서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입은 무겁고 앞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 된 것 같다. 차라리 속으로는 쌍욕을 하고 있더라도 습관적으로 남발하는 미소와 땡큐, 익스큐즈미의 새털 같은 가벼움이 때로는 예의 있어 보일 때가 있다.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일수록 옷깃을 스쳐도 익스큐즈미, 스미마셍, 미안합니다. 접시를 옮겨줘도 땡큐가 자동으로 나오는 표현이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에 윤활유가 되어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꼭 목소리를 안 내더라도 가능하다.
운전을 하면서 부득이하게 끼어들 때면 깜빡이를 한번 켜주며 미안함을 표시하거나 손짓이나 합장으로 표하는 것도 가능하다.
역사와 문화를 떠나서 사람들은 원초적 동물의 근본으로 볼 때 친절을 베풀었으면 그에 상응을 무의적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으면 자존심과 감정의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지금 저 신호등 앞에 정차를 하고 마주 보며 목청을 올리는 사람들도 사회적 지위를 떠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깜빡이를 켜주거나 손인사를 건넸으면 웃으며 뿌듯해할 것을 이를 생략하다 보니 사람들의 바쁜 활동 속에서 탁탁 걸림이 생기는 것이다. 아쉽다.
가벼움의 역설
사회가 발전할수록 세분화될수록 점점 다양한 활동이 많아지며 부딪힘도 많아진다. 꼭 물리적인 대면 접촉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상의 모임이나 SNS등 가상의 활동들도 빈번하다. 여기서 나오는 이모티콘 하나의 위력을 우리는 익히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무뚝뚝한 정보의 전달만으로는 때론 괜스레 불필요한 오해와 감정으로 원만한 소통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정확한 정보전달에 얹혀가는 윤활유의 이모티콘이나 감사의 표현은 AI가 하지 못하는 감동을 나누게 되어 오히려 매력적인 자신을 돋보이게 된다.
이렇듯 현대에서는 겸손한 마음과 달리 감사의 표현은 더욱 가볍게 남발해야 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재잘거리듯 감사인사를 재잘거려도 절대 가볍게 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살갑게 느껴져 좋은 인상이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늘 엄하게 굳어있는 나의 표정처럼 살아온 관성으로 살가운 것이 힘들겠지만 표현의 가벼움을 습관을 들이려 자주 팔푼이가 되도록 애써야겠다.
'굿모닝~!!'
마침 글을 쓰고 있는데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직원이 있어 큰 손짓으로 거수경례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