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준비를 마치고 나면 받는 보상이다
기다리고 있다.
늘 이렇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핸드폰 비상문자를 보고는 베란다 문 닫고 창문 닫고 꼭꼭 여미고 마른 수건 깔아 놓고 기다리고 있다.
태 풍 을
헐~ 이럴 수도 있는가 내가 태풍을 맞을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제 오느냐고 TV도 보고 바깥바람도 체크해 가며 어릴 적 시골장날 외할머니 오시는 보따리를 기다리듯 목을 빼고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무언가 준비를 마쳤던가 아니면 소임을 다하였다면 기다린다. 위험이든 보상이든 그 어떤 결과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목표를 알고 방향성이 있어 그리고 향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혹시나 하는 이심전심의 기다림은, 준비를 마치고 소임을 다하고 기다리는 기다림과는 차이가 크다 전자는 수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마치 어릴 적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함정놀이에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곳에 함정을 파 놓고는 누가 빠지나 기다리듯 가끔은 엉뚱한 곳에 헤매고 다른 일을 해 놓고는 무작정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나도 한때 쓸데없는 명성과 허울에 씌어 '이렇게 살아야 한다 그럴 땐 그럴 수도 있지' 마치 달관한 사람처럼 온갖 좋은 소리는 다 해주고는 정작 본인은 그렇게 못하면서 대접받기를 기다리는 시공간을 구별 못하는 사람이 되곤 했었다.
하지만 떠드는 말과 달리 브런치의 글은 계속 읽다 보면 꾸준함과 일맥 상통하는 흐름이 있어 독자가 보기에도 그는 준비를 마쳤음을 알게 해 준다. 적어도 내가 늘 알고 있는 작가님들은 그랬다.
그런데 마침 브런치에서 어떤 분야에 준비가 다 되신 분들에게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팬으로 독자로 알던 그분들 모두 하나같이 녹색의 크리에이터라는 것이 붙어있다. 훌륭하시다. 나의 판단도 맞았다.
준비를 마친 기다림은 보상이다
새벽 4시 루틴에 의한 기상과 산책 겸 운동을 마치고 나면 뿌듯해하며 새로운 아침을 기다린다. 행복한 기운으로 차를 마시며 티스토리에 일기를 써 올리고 브런치로 옮겨와 글을 읽다 끄적이기도 한다. 이렇게 보상받는 조용한 아침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나면 일상의 숙제들이 밀고 들어온다. 게 중에는 예상도 준비도 안 한 일들도 섞여 온다. 편안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한 시간들에 이리저리 치이고 나면 이제 다 마쳤다고, 준비가 되었다고 오후의 일상 중 나의 기다림이 있다. 보상으로 헬스클럽 가는 일이다. 그리고 저녁 루틴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보면 기다림이란 안정감 있는 준비와 소임을 다했을 때 생기는 일종의 보상임은 틀림없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가끔은 쓸데없는 기대와 기다림으로 스스로 가는 길을 어렵게 할 때가 있다. 그냥 태풍을 맞이하듯 준비를 해놓고 소임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당당한 기다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