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8월 15일이면 동해안 바닷가에 찬물이 돌기 시작하여 물에 들어가기 힘들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말이 있는데 아직 더위가 남아있지만 한풀 꺾여 든 것은 분명하다.
올여름 우리 집에 소동이 났다.
중천의 해가 아니더라도 아침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리쬐는 햇살은 촉을 달았는지 살갗을 파고드는 따가움으로 때린다. 매미 소리마저 더위에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한두 걸음에도 땀이 흐르는 세상이 사우나통이 되어버렸다.
때를 맞추었는지 할아버지 구순으로 귀국한 김에 한두 달 보따리를 들고서는 아들 딸 모두 한집에서 뒹굴고 있으니 집안에서야 오죽하랴 원래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던 나는 한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살고 있었는데 호텔로 옮기겠다 어쩌겠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에어컨 비스므리한 것 하나 달아 매었더니 조금 살 것 같다고들 한다.
따님은 미국 회사 재택근무의 시차로 밤을 새우고 낮에는 잠깐 자다 이 짧은 한국 방문을 만끽하러 채비를 갖추고 나선다 피곤도 못 말려 코피까지 쏟으며 낮에는 열심히 놀러 다닌다. 대단한 체력이다.
아드님께서는 집밥을 먹고 싶다는 부푼 게으름을 탑재하고 와서는 하루종일 빈둥거리다 꼴랑 운동 한번 하고 나면 그대로 뻗어 버린다. 얕은 인내심과 엄마의 쾌재 속에 드디어 다시는 여름에 한국에 안 오겠다는 말만 되뇌며 결국 돈을 더 주고 비행기표를 앞당겨 변경하였다.
아내는 자꾸 아이들 눈치를 보며 밥 해주는 고역을 아냐고 나에게 눈치를 준다. 하지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챙기려 불 앞에서 열심이다. 드디어 두 달을 버텨 내더니 아이들이 더위에 탈출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나니 자기도 더위를 먹은 것 같다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같은 방구석에서 뒷정리하러 다니며 한껏 움직이는데 도통 더위를 잘 모르겠다. 이상하다.
'아빠는 찜질방 좋아하니 더위 체질인가 봐'
딸의 한마디에 모두가 그렇게 몰고 가는 것 같다. 찜질방 하고 집안의 방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나도 땀이 많이 나거든
하지만 하나 다른 것은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더위가 약한 모습을 보고 덤벼들까 봐 덥다 덥다를 남발하지 않고 똑같은 일상으로 살뿐이다.
남들은 이해할는지 모르지만 체감온도의 시원함을 스스로 마음으로 만든다. ㅎ
서재 책상의 더위가 기본이라 인식되면 선풍기 하나로도 시원함을 느끼는 것이고 에어컨 밑의 시원함이 기본이 되면 선풍기 바람도 더운 것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이래저래 한바탕 올여름 소동에 정신없다가 아이들이 돌아가겠다고 나서는 통에 짐 싸 돌려보내고 조용한 방에 싸매고 드러누운 아내를 보며 그제야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