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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Sep 26. 2023

우중 산책

여전히 나올 사람은 나와서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다


똑똑똑

아직 여명이 찾지 않아 어둑한 바깥에 빗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나는 걸까 유리창에 부딪히는 걸까 새벽 신선한 공기를 마셔보려 나서려는 마음을 갈등 속으로 넣고 있는데 며칠 전 들은 사촌 형님의 일화가 생각났다. 70세를 바라보시는 형님은 94세 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운동장 산책을 하신다고 했다. 하루는 운동장에 나서자 비가 내려 꾀가 나신 어머님께서 비 핑계로 돌아서려니 갑자기 우산을 확 펴어 넘겨주더라 말하셨다.  


글을 멈추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쾌한 빗소리를 들으며 올라선 산책로는 비에 흥건해져 피할 곳이 없다. 요리조리 폴짝거리다 에라잇 발을 담갔더니 씩씩해졌다. 그제야 떨어진 낙엽도 보이고 웅덩이에 비친 가로등도 보이고 나도 보인다. 신경은 하나밖에 몰두를 못하는 모양이다


조용히 걸으니 빗소리에 잡념도 사그라들며 감정이 촉촉해진다.


우중 산책 > 


우산 쓰고

빗속을 걸으니 

주책이라 신난다 


우주와 맞닿은

촉촉한 기운

왜 이리 기분 좋을까 


갑자기 뒷짐을 지고 싶다 




여전히 나올 사람들은 나와서 자기 루틴에 몰두하고 있었다. 묵직한 공기를 마음껏 흡입했더니 가슴이 깨끗하다. 오늘 하루도 힘차게 보낼 것 같다. 


우중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맑은 정신이 글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보다 나의 나태해짐을 두드려보고 나가려고 한다. 나태해짐의 징표는 미루기에서 시작된다. 누가 말했던가 미뤄서 생긴 안 좋은 결과는 불행의 시작인 경우가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나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소한 일이라도 미루지 말고 즉각 실천하자 요즈음 조금씩 풀어지는 모습이 나오려 한다.


지금 내 방을 서성이던 아내가 책상 위에 약봉지 몇 개를 주워 들더니 책상의 어지러움을 지적하고 있다. 정리를 해야한다. 냉큼 일어났다. 

글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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