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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Oct 12. 2023

열쇠 꾸러미 자랑

변화에 느긋한 결과다

옛날 대학 다닐 때는 음악감상실에서 심각하게 담배 피우는 것이 멋져 보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자동차 키를 들고 다니며 허리춤에 핸드폰을 매달고 다니는 것이 멋져 보였고 결혼을 하고는 아파트, 회사책상 등 열쇠 꾸러미를 주렁주렁 차고 다니는 게 멋져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마트 카트에 태워 주렁주렁 매달고 먹고 싶은 과자 맘껏 고르라 하며 돌아다니는 게 의젓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깔끔하게 가방하나 메고 빈손으로 다니는 게 멋져 보인다. 하기사 핸드폰만 있으면 모두 필요 없다. 다들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려. 밖으로 자랑할 것도 없어졌다. 그런데 미국에 와 보니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다.



이곳 텍사스 플래이노는 전형적인 가을 맑은 날씨다. 댈러스를 중심으로 딸은 플레이노에 아들은 매키니에 산다. 우리가 보통 매트로폴리탄 댈러스는 잘 알고 있지만 주변의 위성도시는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댈러스 생활권으로 플레이노는 미국에서 살기 좋은 지역으로 여러 번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이곳을 다녀보니 운전하기 참 편하게 도로들이 잘 연결되어 있다. 어딜 가나 도시로 8차선 도로들이 관통하고 그 주변으로 널찍한 간선도로가 연결되어 천천히 양보를 하며 STOP사인, 우선 멈춤에 신경 쓰며 다니면 편하다. 모두 양보와 순서를 잘 지키는 것 같다. 교통질서와 사회적 약속의 실천은 최고여서 운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는 것 같다. (참 뉴욕은 예외라고 하더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본인들처럼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것 같다. 그 진실된 속마음까지는 몰라도 상대방을 우선 생각하는 마음에 미소와 쏘리, 익스큐즈미, 땡큐를 남발하며 서로의 부딪힘을 최소화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회사에서 미팅이나 메일을 쓸대에도 언어의 선택에 무척 신경 쓴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단어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 했다. 모태 신앙 때문인지 이민자들의 나라라서 아니면 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모두 사람을 우선으로 여유를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표현은 적극적인 것 같다.


우리는 유교문화로 태생적인 배려의 감성을 갖추었으니 주로 진실된 속마음을 우선으로 하고 이들은 속마음 보다 직접적인 표현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어제도 딸 내 집 아파트 창틀을 교체하러 작업자가 왔기에 데 문을 붙잡아 주었더니 땡큐를 연발한다. 이리저리 느림보로 뒤통수를 한대 쳐줄 만큼 굼떠도 편안히 지켜보다 끝나자 '퍼펙트'하며 땡큐를 연발하자 만족하며 엄지를 치켜들며 웃으며 나간다. 서로가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어제 큰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사며 계산대 앞에 서있는데 갑자기 게산하던 캐쉬어 청년이 밖으로 뛰쳐나가더니 발갛게 달아오른 노을을 싱글거리며 연실 찍어댄다. 모두들 '와아~' 하고 지켜볼 뿐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나도 얼른 나와 한컷을 찍었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다.


산다는 것이 속마음은 모르겠고 드러내며 표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이것이 더 좋다고 느껴진다. 앞으로 나의 생활태도로 새겨 넣어야 할 점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도 있다. 최첨단이라 자랑하면서 차량에도 그 흔한 스마트키보다는 직접적인 열쇠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요즘 나오는 차는 안 그러겠지만 아파트나 기타 출입문은 여전히 열쇠만 사용한다. 그러니 지금도 주렁주렁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닌다. 심지어 핸드폰도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우리네처럼 빠른 변화를 원하는 것보다 사람 위주의 삶의 태도에 느긋함이어서 인지 사소한 것에 표현과 배려는 잘해도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열쇠 꾸러미가 이것을 말을 해주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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