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한다
빈손으로 스쳐 지나간다. 뭔가 허전하며 울컥했다.
진정 뜨겁게 달궜던 한여름이 꿈으로 지나가려는가 제법 아침에 바람이 불어온다. 책상머리에 붙어 창밖만 바라 보기에는 옹색해 보여 얼른 이어폰을 끼고 집을 나섰다.
여유로운 아침 산책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분명 아침 바람이 불러들였으리라 그도 반가웠던지 지나는 얼굴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는 손길이 따스하다.
길게 뻗은 큰 나무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생각의 느긋함에 호흡마저 가볍다. 이제 모퉁이를 지나 넓은 블록 위를 걸을 때면 성난 사자처럼 다들 팔을 휘저으며 씩씩한 단거리 경주를 한다. 숨이 차오를 때쯤 나타나는 운동장 모퉁이에선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텅 빈 농구장 새침한 여학생이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훈련을 시키고 있다. 손을 펴서 길게 누르니 강아지가 엎드린다. 냉큼 간식하나 던져주고 왼손을 몸에 붙여 휘드르니 잽싸게 일서서 옆에 나란히 붙어 앉는다. 또 간식을 얻어먹고 계속 고개를 쳐들고 다음 지시를 기다린다.
누가 누구를 훈련시키고 있는지 모를 듯 아주 절도 있는 모습에 둘이 합이 잘 맞는다. 신기하다.
다시 몸을 달궈 걸어 나가면 좁은 길로 들어선다. 마주 오는 사람들이 비벼대는 곳이다.
'우측으로 가세요', '제발 우측으로 갑시다'
속으로 외치지만 지그재그 걸음 피해 다니느라 피곤한 길이다. 분명 바닥에는 큼직하게 우측통행 화살표가 붙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우리들의 합이 안 맞는가 보다
사실 우리도 많은 훈련받고 이곳까지 왔다.
빨간 신호등에 서고, 금 밟으면 안 되고, 손짓에 멈추고, 눈 맞으면 인사하고, 심지어 바른생활/ 도덕/ 윤리라는 교과서를 어려서부터 배워왔으며 공중도덕이라는 미명아래 참고 절제하는 기술까지 습득한 우리다. 서양의 땡큐와 익스큐스미에 목이 쉰 에티켓이란 요물을 비웃을 줄 아는 눈치 백 단의 도덕군자들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 그런 우리끼리 합이 잘 안 맞고 있다.
왠지 잘 지키면 손해 보는듯하고 경쟁에서 처지는 바보스러운 사람이 되는 듯하여 우리 고수들끼리는 자존심이 팽팽한데 그럼 간식을 주고 행동을 해주는 여학생과 강아지의 합처럼 우리도 무언가 주고받는다면 심적인 안정이 되지 않을까
땀을 식히며 앉은 광장에는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도는 아이들이 손짓으로 서로 웃으며 비켜 다닌다. 그렇구나, 아침에 스치는 우리들은 입이 무거운 도덕군자들이니 미소와 목례 정도라면 충분하리라 본다. 그 정도 주고받으면 자존심은 사라지고 각자의 내공 덕분에 합이 잘 이루어질 것 같다.
차들도 끼어들면 깜빡이 정도는 하지 않던가
내일은 내가 먼저 미소와 목례를 주고 오른쪽으로 뻗으면 웃으며 비켜 지나겠지
합이 잘 맞는 가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