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와의 화해에서 시작된다

관계의 리듬 그 시작과 끝

by 롱혼 원명호

④ 관계의 리듬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관계의 리듬을 이야기하면서 '고독'을 먼저 떠올린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관계의 리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나'라고 믿어온 그 존재와의 화해와 이해가 먼저 이뤄져야만 다른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2년 전 퇴직을 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헬스 운동과 함께 열흘간 명상센터를 찾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쯤으로 생각하고 간 자리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배운 명상, 그리고 이후 책과 실천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달랐다. 진정한 나를 비추는 배경자아를 인식하면서 나는 고독을 외면이 아닌 기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독은 도피가 아니라, 자기를 단단히 세우는 힘이었다. 그래서 관계의 리듬에서 나는 '나와의 관계'를 맨 앞에 두었다.


그다음에 시작한 것은 '거리 두기의 리듬'이었다. 그동안 무분별하게 만들어온 관계들에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했다.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말이다. 물리적/ 정신적 거리를 조율하는 일은 오히려 내게 안정감을 주었고, 존재의 귀함을 다시 일깨웠다. 그것이 자존감을 곧게 세우는 기둥이 되어 이후의 '갈등과 화해의 리듬', '대화의 리듬'을 가능하게 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침대를 정리하고 루틴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며 명상을 한다. 그 순간 나는 내면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기분이 좋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

계획한 일은 잘 챙겼고, 미룬 일은 없다.

잘 될 것이다.

모두 행복하기를.'


그리곤 다시 일상의 리듬으로 들어간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아내와 간단한 조식거리와 커피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 소박한 대화 속에서 낯선 설렘과 적당한 긴장이 흐른다. 그것이 바로 우리 부부의 '대화의 리듬'이다. 주말이면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안부를 여쭙고, 멀리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도 소식을 나눈다. 이렇듯 나의 대화는 늘 적당한 리듬과 박자를 찾아간다.


모임이 있는 날은 또 다른 설렘이 찾아온다. 고향친구들, 학교동창들, 지나온 사회의 여러 인연들. 이제는 날 찾지 않아도 마음 상하지 않는다. 쫓아가려 애쓰지 않아서 행복하다. 오히려 홀로 있음이 든든한 자존감이 되어 나를 우뚝 세운다. 오늘처럼 설레는 만남은 각자 거리를 두며 서로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남의 대화는 상처도, 오해도 없다. 오직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만 오간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관계의 리듬'이 주는 행복이 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아내와, 지인들과 때로는 나 자신과도 부딪힌다. 예전에는 회피했지만 이제는 화해의 방식을 배웠다. 하루 이틀 숨을 고르며 화해의 리듬을 타다 보면 감정의 파도도 자연스레 가라앉는다.


결국 관계의 리듬이란 거리두기와 숨 고르기, 그 단순한 조율 속에서 흐른다.




톨스토이는 말했다. "모든 사람은 세상을 바꾸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꾸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을 쓰고 나니 이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세상의 문제는 나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말의 확신이 점점 깊어졌다.


나의 '관계의 리'듬은 속도와 거리, 대화와 갈등, 함께함과 홀로 있음의 균형 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은 어제나 나 자신과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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