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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떡 사러 2시간을 달려갔다

소통에서 팬덤 그리고 신뢰로 확장되어 가는 그 믿음의 크기가 무섭다

by 롱혼 원명호

설대목을 맞아 활기찬 시장의 분주함에 어릴 적 명절을 앞둔 들뜬 추억까지 불러온 것도 코로나를 지나며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일부러 바쁜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 휩쓸리며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다 구색을 갖춘 명절 먹거리들을 챙겨 들고 집으로 가는 길은 뿌듯한 충만으로 가득 찼다. 마음의 여유를 풀어내며 커피를 마시는데 아내가 나의 눈치를 흘깃 보더니 이제 떡국떡만 사면 된다고 한다. 그거야 나 혼자 다녀오면 될 일. 하지만 아내가 말하는 떡국떡은 함께 가야 했다. 그것은 집 앞 떡집이 아니라 편도 2시간이 넘는 논산에 떡국떡을 사러 다녀와야 하기에 그렇다. 군대 훈련소 입대할 때 가봤던 논산까지 무지개꽃 떡국떡을 사러 간다. 대단하다.


‘쌀집아줌마’라는 인스타에서 시작된 떡 열풍이 파워 인플루언서를 통해 우리 집에도 당도하였기 때문이다. 무지개꽃떡의 인기가 많아 일찍 가야만 받을 수 있다며 재촉하길래 겨울 내내 집안에서만 지내는 아내에게 미안함과 나도 궁금하여 아침 일찍 논산으로 달렸다. 시내에 있는 일반 떡집으로 생각했었는데 웬걸 논밭 한가운데 떡하니 건방스럽게 자리 잡은 도정 방앗간 폼새의 쌀집아줌마는 쌀과 떡을 직접 도정하여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한 썰렁한 공장 같은 곳은 둘러볼 것도 없는 그냥 공장이다. 어이가 없다. 진열 매장도 보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차 안에서 10시 개장까지 기다리는 사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쁜 마음을 담은 몇 분이 더 오신다. 신기했다. 이제는 위치와 장소가 문제 되지 않는 세상이다.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SNS 그리고 파워 인플루언서의 검증된 신뢰의 힘일 뿐이다.


세상과의 통로를 열어주는 소셜네트워크(SNS)는 이제 소통을 넘어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파워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여기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인플루언서라 칭한다. 그들은 잘 소비되는 콘텐츠 제작자이자 충성도 높은 팔로워를 보유한 셀럽이며, 이들이 보유한 플랫폼(채널)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유통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신경을 곤두세우고 창밖만 바라보는 내 옆의 아내도 길을 걷다가도 아니면 커피숖에 있다가도 좋아하는 인플루언서의 인스타그램 라방을 할 때면 놀란 토끼의 눈으로 어쩔 줄 모르며 장소 불문하고 빠져든다. 심지어 노트까지 들고 정색을 하며 몰입을 한다. 그들의 열렬한 팬이 되었고 그들과 팬덤을 이루며 나가고 있다. 우리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공유하는 삶과 함께 공감과 우정의 감정을 특징으로 하는 팬으로 구성된 그런 문화를 팬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감정의 문화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플루언서를 향한 무한 신뢰로 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 떡국떡을 사러 논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소통에서 시작하여 팬덤 그리고 신뢰로 확장되어 가는 그 믿음의 크기가 무섭다.


맞은편 문이 빼꼼 열더니 손짓을 한다. 오라는 것이다. 일찍 왔다고 문을 열어주어 들어가 보니 조그만 매장에는 진공 포장된 떡들이 실망스럽게 너부러져 진열되어 있어 멍하고 있는데 뒷문에서 나온 여사장님께서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투덜거리신다. 아직 시간이 안되었는데 불렀다고 나무라시는 것 같다. 어제도 고객들이 서로 떡을 가져가려는 싸움을 말리거라 혼이 났다면서 푸념을 하신다. 손짓하셨던 남자 사장님께서 옆으로 오라더니 주섬주섬 챙기시며 예약하신 분들에만 주는 떡은 따로 있다면서 의기양양 으쓱하시며 우리더러 다짜고짜 어디서 오셨냐고 묻는다. 수원에서 왔다고 하자. 호탕하게 웃으시며 더 멀리서도 많이들 찾아온다고 기분 좋아하신다. 겉으로 보기에는 떡국떡 이라기보다는 과자 같은 것이 오밀조밀하다. 호의 인지 원래 그런 건지 다행이다 싶게 몇 봉지 챙겨 사들고 나오는 아내의 흐뭇한 얼굴은 세상을 가진 듯 황홀하다. 팬심이 가득한 인플루언서가 끓인 떡국의 장식에 매료되어 수원에서 논산까지 떡국떡을 사러 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핀잔을 주고 같이 올 생각조차 못했을 내가 함께 온 것을 보면 나도 많이 변했다.


논산을 다녀온 후 소통과 팬덤 그리고 신뢰까지 이어지는 현상을 직시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Tistory에 일기형식의 글을 매일 올리며 나름 블로거라 생각하는, 나 홀로 만족에 지낸 나에게 그런 공감과 신뢰의 열정적인 팬덤 현상이 그저 신기하며 부러울 뿐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꾸준한 끈기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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