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에도 모두가 즐거워하는 방법이 있었다
오지랖이 넘친다는 말이 있다. 이일 저일 관심도 많고 참견도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일컫는 말이다. 그 오지랖을 보았다.
지금 추운 날씨 탓인지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조용하다. 오후 3시 서울로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에 앉아 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눈을 감고 있는 애매한 분위기다. 이때 쇳소리의 큰 목소리가 정적을 깬다.
"이야 오랜만이야 반갑구먼"
"그래 아이고 김 oo이 죽었다고?"
"아니 박 oo도 지난번에 죽었는데 또 누구 죽은 놈 있어?"
사람이 별로 없는 차 안이라 쩌렁쩌렁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생사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보아 나이 드신 분은 분명하다. 아마 귀가 안 좋으신 분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는데 자꾸 대화가 신경 쓰인다.
"우리 일본 학교 다닐 때 그놈이 제일 똑똑했는데"
"참 최 oo은 왜 코빼기도 없어 이놈도 죽은 건가?"
피식 웃음이 나서 삐죽 얼굴을 내밀어 보니 저 멀리 경로석에 하얀 백발의 통통하신 노인께서 두 손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계신다. 죽음을 묻는 안부가 계속 이어진다. 아마 이분께서는 일본에서 공부하시고 학식을 좀 갖추신 분 같은데 나이 탓인지 주변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조금 있으려니 나의 예상대로 한 사람이 나선다. 빼빼 마른 지친 듯 보이시는 분께서 더 큰소리로 질러댄다.
"아 C 죽은 게 자랑이냐 조용히 좀 합시다!!"
통화하느라 반응이 없자 기어코 그 앞을 찾아가 다투기를 시작하신다. 차 안이 금세 더 소란스러워졌다.
모른 척해야 하는가 반응하여 같은 사람이 돼야 하는가
오지랖인가 아니면 정의인가
헷갈린다.
사당역 5번 출구.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밖에서 기다리려니 더 추워진다. 이리저리 움직이다 5번 출구 바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기웃거렸다. 내가 그 틈에 끼어 있어도 자연스러운 나이들이다 보니 아무도 내게 신경을 안 쓴다. 이 추위에 장기판이 세 군데나 나란히 펼쳐 두고 있다. 뭐지 내기 장기인가? 손을 비벼가며 몰두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서성이며 나같이 장기판을 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만 매섭다. 건너편에 앉아 장기를 두는 덩치 큰 아저씨의 장기판 위에 몇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니 막바지에 오른 듯 더 초조해하며 연실 손을 비벼댄다. 자주 이곳에 계시는지 지나가는 사람과 손 인사까지 한다. 기어코 예상대로 사달이 났다. 잠시 친구가 왔는가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아마 훈수가 있었는지 뒤에 서있는 사람과 괜한 말트집이 시작되더니 싸울 듯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장기는 훈수가 묘미인데. 이것도 오지랖인가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친구를 만나 바로 앞 식당으로 오르자 곧바로 로봇서빙이 시작된다. 건방진 로봇이 가져온 것을 꺼내 먹으라 명령한다. 손님인 우리는 순순히 그 지시에 따른다. 어째 로봇에게 이렇게나 관대한지 모두 용서를 하며 길도 잘 비켜준다. 이 가게의 부대 음식과 집기등은 모두 알아서 필요한 것은 직접 가져다 먹으란다. 심지어 라면도 직접 끓여 먹으란다. 주인은 아예 홀로 나오지도 않는다. 손님들 모두가 주인인양 서서 설쳐 댄다. 그런데 밉지가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칭찬을 하고 사장님께 좋은 말을 던지고들 나간다. 이것도 손님들의 오지랖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그 이유는 부대 음식을 가지러 갔다 알았다.
‘남겨도 되니 막 퍼다 드세요’
큼지막한 글씨가 기쁘게 했다. 역설의 말 한마디가 불친절의 모든 것을 갚고도 남았다. 남는 장사를 하고 계신다. 모른 척해야 하는가 반응하여 같은 사람이 돼야 하는가 그것이 오지랖인지 아니면 정의인지 고민이 필요 없다. 역설의 말 한마디면 해결되고 모두가 즐거워하는 우리네 보통 삶이었다.
'다 들려서 재미있으니
맘 편히 큰소리로 통화하세요'.
'훈수 들어도 되니
기왕이면 같이 앉아 합시다.'
'남겨도 되니
막 퍼다 드세요.'
역설의 내심이 앙큼해서 그렇게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