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는 아직 벗기 싫어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내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역 내에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데 열차 안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 달라고 말한다. 정부가 코로나가 발생한 지 3년 만에 실외 마스크착용 의무해제를 하더니 곧이어 실내마스크 착용의무의 부분해제까지 선포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을 하면서도 대부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지하철역 구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두 쓰고 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행동의 안정화나 자동화된 수행을 습관이라 하는데 마스크착용이 3년이 지나면서 마스크가 우리네 생활 습관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오히려 마스크를 벗으면 허전하고 뭔가 이상하다.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도 경험이 많다. 집 밖을 나왔다가도 갑자기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분명 마스크를 잊고 나온 사람이다. 밖에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잠시 잊은 것이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팔 한쪽에 흰 마스크를 완장인양 끼고 다니시는 어르신들도 많이 계신다. 늘 준비되어 있다는 안심의 시그널을 주변에 주고 계시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감기 걸린 사람 이거나 뭔가 좀 수상쩍은 행동을 할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스크착용을 편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를 들어 보면
첫째. 얼굴 보여주지 않아서 편하다
둘째. 감정표현의 가림이 편하다
셋째. 부분해제라 차라리 계속 쓰는 것이 더 편하다
넛째. 건강의 이유로 쓰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곧 추억이 될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오해도 있었다. 새로운 직원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볼 때면
"죄송하지만 마스크 좀 잠시 내려 보실래요"
그때만 잠시 얼굴을 흘깃 보고 계속 얼굴을 못 봐서 어느 날 갑자기 맨 얼굴을 보게 되면 놀란다.
"누구세요?"
정말 그랬다. 같은 직원끼리도 신입의 얼굴을 모르고 지내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눈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져 상상 미인, 상상 미남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이제는 실외는 당연하고 실내에서도 벗어도 된다고 한다. 당당하게 벗으면 되는데 이게 쑥스럽고 고민이 된다. 심리학적으로 ‘동조효과‘라 한다는데 새로운 행동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동조하는 경향이 크다고 하니 앞으로 노 마스크가 일반화되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의미다.
지금 옷장 속에 걸린 내 옷들 주머니 곳곳에 나도 모르게 마스크가 숨겨져 있다. 마스크가 없어서 겪는 황당한 비상상태를 대비해 틈틈히 넣어둔 것이다. 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또는 욕먹기 싫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젠 벗어도 괜찮다는데도 못 벗고 있다. 걱정이다. 사실 나는 성격상 동조효과 영향이 커서 마스크는 주변상황을 보면서 당분간 계속 쓸 것 같다. 겉으로는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말로 덤덤해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감정표현을 감출 수 있는 것도 한 이유이다.
허탈하다
바삐 달려가던 세상을 코로나가 휘저어 세월의 앞뒤를 모두 뒤엉켜 놓고는 짐짓 모른 척 유유히 빠져나가려고 한다. 같이 지내던 마스크는, 그 습관들은 어쩌라고 혼자만 가는가.
평범했던 일상에 마스크 하나로 허둥대며 깜짝 놀랐던 세상은 지나가고 있는데 한번 놀란 가슴은 다음엔 또 무엇이 우리의 허를 찔러대며 한바탕 세상을 휘저을지 걱정도 되며 궁금도 하다. 모두들 정신이 없던 틈에 먼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AI까지 엉겁결에 우리 곁으로 달려와 있으니 이제는 웬만큼 큰 것이 안 오면 무관심할 것 같다.
어쨌든 기대할 것이 많은 지구 세상살이가 심심치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