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의 욕구가 좌절되면 공격하거나 회피를 한다는데
퇴근 시간 아내에게 부탁받은 물건을 사러 근처 대형 마트로 갔다가 마침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주차된 차 안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갑자기 달려와 내 앞에 정차한 차 안에서 다투고 있는 부부를 보고 있다. 흥분한 남자의 손짓과 가방을 집어던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알 수가 있다. 내려야 하나 어쩌나 당황스러운데 묘한 미소가 올라온다.
지금이야 이런 모습을 보고 한갓 추억이라며 여유를 부리지만, 나도 저렇게 차 안에서 아내와 다투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한참 혈기 왕성 할 때는 서로의 말 한마디에 욱하여 주차장에서 다툼이 잦았다. 보통은 입구 가까운데 주차를 하자는 요청과 차량이 삐뚤게 주차되어 있는 모양새에 그리고 무리하게 들어준 양보에 대한 불만에 찬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곤 했었다. 심지어는 마트 주차장에서 주차하다 말고 집으로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여유라기보다는 아내와 함께 지낸 시간이 만들어준 공통점으로 점점 동일시되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다툼의 의견들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마트 출입구 가까이 주차를 하자며 자리를 찾겠다고 마트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 때면 그사이 멀찍이 차를 대고서는 걸어가면 될 것인데 굳이 이럴 필요 있는가의 의견충돌이다. 살아가는 대에 큰 문제가 없는 일시적 생각의 차이이다. 그리고 차가 삐뚤게 주차되었다는 것은 주로 나로 하여금 발생한 문제인데 유독 나는 선에 민감하다. 선이 그어져 있으면 그 안에 쏙 들어가야 맘이 편하다. 옆에 차가 삐뚤다고 나까지 삐뚤게 대기가 싫은 것이다. 또 무리한 양보는 깜빡이를 먼저 켜고 돌다 주차공간을 발견하고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멍청한 일 때문에 혼이 나곤 했던 것이다. 웃기다, 원래 부부는 창문틀이 이게 앞쪽이다 저것이 앞쪽이다 가지고도 다툰다던데 그럼 왜 그럴까? 아마 주차장이라는 장소에 특정해서 그렇지 사실 몰라도 곳곳에서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다투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받는 자존심의 상처가 제일 클 것이다. 다들 부정하겠지만 사실이다. 서로 살아온 오랜 습성과 관심이 다른 데다 특히 부부 사이이면 무조건 자신을 먼저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상식에 어긋나서 이다.
친구 중에 세상을 해탈한 듯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는 행복해 질려면 나에게 있는 불행을 모두 버리면 된다고 선문답처럼 이야기한다. 너무 철없고 무책임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비롯된다. 내가 틀렸습니다로 나를 바꾸면 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생활을 통해 강압적으로라도 때로는 귀한 배움을 통해 인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정에서 특히 부부사이에서는 더더욱 인정을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가족이나 부부사이를 동일인으로 착각을 하기 때문 일 것이다. 어떤 책에서 부부싸움은 서로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여 기대하고 있던 친밀감의 욕구가 좌절되어 공격하거나 회피를 한다며 공격행동은 적극적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회피행동은 행동을 전쟁보다 평화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그 말이라면 지금 앞에서 싸우고 계신 두 분은 적극적으로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잠시 기다려지면 곧 잠잠해지며 계획된 쇼핑을 할 것 같다.
자식들도 성장하여 품을 떠나면 하나의 객체가 되듯 동물사회의 자연을 인정해야 한다면 부부 또한 객체인 것인데 어떻게 하나의 생각으로 동일시되겠는가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부부의 생각이 점점 동일시되더라, 아마 살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보고 느낌이 있어 감각적으로 그중 장점들을 쫓아 사안별 어느 한쪽으로 흡수되어 공평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부부의 모습은 두 사람의 합의된 최선의 선택된 작품이 되는 것이고 그 덕분에 서로의 자존심도 챙기니 둘 다 삶의 승리자가 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의 과정이 나를 찾아가는 인생인 것이다.
내가 깊이 감명받고 있는 사람 중 '비욘 니티코 린데블라드'는 17년 동안 수행을 하면서 얻은 게 무엇 이냐는 질문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17년 수행의 결과를 우리는 날로 먹는 것이지만 그가 말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입니다.
지금 앞에 아직 불규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부부가 나의 이 브런치를 읽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