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오지랖 사이에는 꼭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사장님 어떡해요? 교통사고가 났어요’
‘몸은 괜찮아?’
‘네 저는 괜찮아요’
우리 회사에 근무하는 베트남출신이지만 한국 아줌마가된 이주임의 다급한 전화다.
가정사가 힘들게 꼬여 홀로 지내지만 똑똑하고 당찬 사원으로 열심히 일을 하기에 다른 직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출퇴근 시 이용하라고 회사차를 배려해 주었다. 그 차를 타고 집에 가다. 불법 좌회전 차량과 접촉사고가 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사고현장에 갈 수도 없어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는 퇴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레커차 기사입니다’
‘제가 도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의외다. 여기서 의외라는 것은 평소 알던 이미지 때문이다. 레커차의 당돌함과 불신을 경험해 봤던 터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레커차 기사님이 사고현장에 도착하니 한국말이 어눌한 베트남분이 당황하고 있는 것을 알고 또 사고 처리를 하는 것을 보니 조금 아닌 것 같아 직접 나섰다고 했다. 나의 허락과 함께 영상 추출과 사고 수습등 그분의 수고로 일이 잘 처리되었고 우리 사원은 안심하여 집으로 잘 돌아갔다.
우리는 대부분 관련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일에 개입하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급박한 순간에 순순 양심은 약자 편으로 움직인다. 물론 외력에 의해 그것과 반대로 행동할 때도 있겠지만 속마음만큼은 안 그렇다. 그래서 지금 레커차 기사님의 행동은 감사한 배려였다.
이번에는 전셋집을 들면서 게약에 따라 수리 후에 이사했는데 하자가 눈에 띄어 집주인에게 문의하고 A/S를 요청했더니 공사하신 분은 집주인은 괜찮다 했는데 이것이 왜 A/S냐며 따지듯 덤벼든다. 이런 행동이 그분에게는 분명 오지랖으로 비쳤다. 기왕에 돈 들여 수리를 하였으니 집주인 입장을 대변하여 꼼꼼히 점검하여 추후 생길 문제를 미리 막자는데 이것이 오지랖이 되었다.
이렇게 본인의 일을 넘어서 예상과 달리 도움을 받는 것을 배려로 감사하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 오지랖으로 불편해하기도 한다.
나설 때와 안 나설 때
참 고민이다. 길거리에서 부당한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가야 되는지 참견을 해야 하는지 이것 또한 배려의 일인지 오지랖의 일인지 어떻게 해야 할까?
배려와 오지랖은 벌어진 상황을 보고, 참견을 해야 할 때 상대방의 허락을 받았는지 여부가 핵심이 된다. 즉, 배려는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 고려하여 그가 원하는 것을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직정에서 회식을 하면서 사람들에 상처를 받은 친구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위로해 주며 그의 허락하에 그의 집에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배려다.
반대로 오지랖은 상대방의 허락 없이 불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상대방이 불쾌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마찬가지 예를 들어, 직정에서 회식을 하면서 사람들에 상처를 받은 친구가 많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위로한다며 굳이 괜찮다는 데도 그의 집에까지 그것도 집 문 앞에 까지 막무가내로 데려다주는 것은 오지랖이다.
우리가 나설 때와 안 나설 때의 판단은 현재 상황인식 후 상대방의 허락을 또는 동의를 구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나도 성격상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굳이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부담으로 불편했던 경험이 많다.
친구야 늘 고마운데 그건 오지랖이였어. 내가 괜찮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