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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이란

가다리는 사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by 롱혼 원명호

늦은 오후 수원역 지하서점 '북스리브로'에서 책을 보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주변 뒷골목 상가들을 다녀본다. 삼겹살집, 순댓국집을 지나니 중국 상가들이 보인다. 말끔한 것을 보아 새롭게 정비를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어 베트남, 캄보디아 식당도 있네. 어슬렁거리며 걷다. 잘못하여 발을 삐끗할 뻔했다. 인도도 좁은 데다 도로와 인도의 높이차이도 크다. 국경이 그어진 모양이다. 재미있다. 어슬렁대며 걷자 보니 벌써 '도를 아십니까?' 두 분이 스쳐 갔다. 물론 대꾸도 없는 나의 직진에 그들도 머쓱했으리라 수원역 주변은 예나 지금이나 다양한 들일로 다들 바쁜 것 같다.


나는 만나는 약속을 하게 되면 어디든 이렇게 항상 미리 나온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시간에 주변을 돌아보는 솔솔 한 재미를 얻어 삶의 기운까지 충전하게 된다. 마침 약속 시간이 다되어 만날 지하 9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편하다. 여유의 기다림은 배려의 아량으로 뭔가 더 큰 것을 얻는 듯 그리고 뭔가 베푸는 듯하여 꼿꼿한 세포 곳곳으로 양분이 빨려 들어온다.


에피소드 1.

어김없이 맨머리를 감추려는 듯 모자를 푹 눌러쓴 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일찍 나 왔는 가봐?”

“아니, 방금 전에 왔어”

의미 없는 습관성 대화를 나누며 근처로 이동한다.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이유는 장소를 못 정했기 때문이다. 커피, 술, 식사 이것에 따라 장소가 결정된다. 그러면서도 서로 묻지 않아도 이 친구와는 술집으로 들어간다. 아마 만나는 사람에 따라 장소가 결정되는 것 같다. 이어지는 대화도 여유가 있다. 일찍 나와 기다린 특권이며 자신감 때문이다. 당당함이 있다 보니 선을 오가는 이야기도 이해되며 재미있다. 오늘은 친구가 다 들어주니까 기다림이 뿌듯하다.


에피소드 2.

기다려도 안 온다. 빙그르 제자리를 돌다. 전화해 볼까 하는데 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올 것만 같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계속 한자리에 서있으니 뭔가 초조하고 안 돼 보였던지 도를 전파하시는 분이 또 찾아온다. 눈을 부릅뜨고 무시를 하고 있다가. 드디어 배려의 한계가 넘어선다. 욱하며 전화를 한다.

“어디야 친구.”

“어디? 아, 참 약속 시간을 깜박했네 어쩌지”

“괜찮아, 일이 바쁜가 봐 그럼 다음에 보지 뭐. 급했으면 전화나 미리 해주지~”

역시나다, 아마 다음에는 내가 먼저 바쁠 것 같다. 기왕에 나선걸음 뒷골목 거리를 한 바퀴 더 돌며 글감 하나 주워 들고 근처 커피숖으로 들어가 속을 진정시킨다.


기다림의 뒤끝은 아주 오래간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약속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이미 나선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절실한 기다림 일수록 그 결과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의 기복 차이는 엄청나다. 즐겁게 만나 승화된 감정은 하늘을 찌를 듯 오르는 반면 기다림에 지친 감정은 배려의 임계치에 따라 배신의 골 나락으로 깊어 떨어진다. 노래에서도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했다. 상대방 보다 기다리는 나만 녹아내리는 것이다.


배려의 한계에는 기다림의 시간과 관련 있다. 어디까지 기다릴 것인가. 우리가 살면서 잠시라도 기다려 보는 무수한 것들 지하철, 택배, 메일, 전화, 편지, 아이들, 아내, 남편, 친척, 친구, 모임, 약속 등등 그 배려의 한계는 상대방에 따라 다르지만 똑같은 것은 그 선을 넘었을 때의 대응 단계이다.


그래서 누가 나를 기다리는 행위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다. 절대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꼭 연락을 해주어라 기다리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절대로, Never 그의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을 것을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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