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OPEN AI라는 회사에서 만든 'Chat GPT-3'라는 인공지능 챗봇이 핫하며 요즈음 이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도 자주 오르내린다. 일론 머스크까지 거론되며 구글의 검색엔진이 챗봇 등장으로 걱정이 많다는 등 야단이다. 나도 궁금해서 가입하고 잠시 써 보았더니 유료라고 돈을 내라고 한다. 얄밉지만 망설이다 유료 가입을 하였다. 탈퇴가 쉽다는 말에 호기심으로 먼저 가입해 본 것이다. 챗봇에다 처음에는 단답형 질문으로 일관하다 보니 우리가 익히 알던 ‘빅스비’, ‘시리’와 별반 차이를 못 느꼈다. 하지만 AI가 한다는데 하면서 좀 더 추상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니 재미있는 답을 한다. 심지어 ‘도전‘에 대한 시를 써보라고 했다.
도전은 결정의 바람이다,
한결같이 날아가는 새처럼,
그 높이에 미치지 못할 때,
다시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간다.
도전은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며,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한 번 더 노력하고, 한 번 더 높이 날아가자,
도전이 우리를 기적의 길로 이끌어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나에게 써준 시다. 시라기보다는 메마른 논리의 포집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미국 의사시험을 통과했느니 논문을 써준다느니 소설도 써 준다는 둥 문과가 큰일 났다는 둥 엄살이 난리인데 그럼 앞으로 AI가 더 많은 data로 훈련이 되고 발전되어 짐은 분명할 테고 핸드폰처럼 우리 옆에 찰싹 달라붙어 모든 것을 코칭하며 다 알아서 도와준다면, 아마 분명히 지금의 그것보다 더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든 직업이 사라지는 무서운 일이 정말 벌어질 것인가? 과연 삭막한 인간관계로 그렇게 비관적 일까?
또 다른 희망
시장에서는 블루오션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일한 시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고부터 전화번호를 몇 개나 외우고 있나 그리고 NAVI 없이 낯선 곳을 과연 자유롭게 갈 수 있을까 그리고 만물박사 naver, 구글이 있는데도 더 똑똑한 쳇 GPT까지 나왔으니, 사람이 점점 생각을 하기 싫어지며 사고의 퇴화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황만 다를 뿐 옛날이야기로 '테니스를 힘들게 왜 직접 하냐 아랫것들한테 시키면 되지'하는 유머가 떠 오를 지경이 되었다.
어쨌든 AI의 장점은 분명 많다. 우리에게 시간의 압축을 선물하여 모든 일에 효율성을 줄 것이고 어려운 모든 사고는 그의 알고리즘이 도와 실 수 없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우주 팽창에 따라 발전 속도가 엄청나 모두 미친 듯 앞으로 달려만 갈 줄 안다 그런데 거기서는 거꾸로 돌아갈 수가 없다. 점점 기초가 없어지고 허공에 붕떠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렇듯 AI는 마치 바벨탑 인양 높게 쌓아 채울 줄만 알지 비워 낼 줄 모른다. 비워낸다는 그 공간의 심오한 철학과 깊이를 어찌 사색인들 할 수 있으리오 이것이 블루오션이며 이것에 우리들의 희망이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설키고 엉킨 것은 AI에게 풀으라 하고 우리는 거기에서 효율성을 얻어 대신 머리와 가슴을 비워내어 충분한 사색으로 따뜻한 감성으로 살자. 모든 면에서 모든 직군에서 말이다. 그러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분명 AI와 대비되는 일이 될 것이다. 정신적 물질적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인간의 삶의 충족에 비움이 더 큰 의미를 줄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들의 역할이 AI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게 된다고 본다. 사색의 data 공급자가 될 것 이기에
" 노자의 ‘허(虛)’, 석가모니의 ‘방하착(放下着)’, 예수의 ‘케노시스(Kenosis)’. 세 성인들은 서로 다른 단어로 ‘비움’을 말했다. 이렇게 ‘비움’에 대한 사상이나 관심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동안 종교나 철학의 영역으로만 간주 돼왔던 ‘비움’이 이제는 ‘현실’로 내려왔다." - 오래전 매경신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