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를 기대하면서
집에 들어서니 문 앞에 택배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겉모양을 보니 귤박스다. 이제 귤도 끝물인데 툴툴거리며 들고 들어왔다. 아내가 놀란 듯 흘깃 내 눈치를 보더니 유튜브 라방을 보다 누가 하도 달고 맛있다 하길래 주문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말을 듣고 산 것이 너무 시어서 못 먹겠다고 해 강제로 내 차지가 되어 내가 먹느라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귤은 무엇인가?
귤은 중신세 후기인 800만 년 경에 처음 나왔다고 하니 엄청난 역사를 가진 과일이다. 우리는 이런 귤을 미깡(일본말 유래), 밀감, 감귤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우리나라 귤은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서 유래된 온주밀감이라 한다.
그리고 귤은 초록색이 군데군데 박힌 귤도 있는데 이것도 정상귤이라 한다. 그런데 육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주황색귤만 귤이다 하여 찾다 보니 생산지에서는 귤을 따자마자 에틸렌 가스를 강제로 분사시켜 전부 주황색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한다. 가끔 부분 물러터진 귤이 나오기도 하는데 아마 이런 연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귤에서 씨앗을 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개량을 해와서 그렇다는데 마치 길에서 동전 줍기보다도 찾기 힘든 게 귤의 씨앗이라고 한다. 이것 한번 찾아내면 행운의 징조가 되겠다.
또 귤이 흔하게 된 후 우리에게는 추억도 많다. 어떤 귤은 손만대도 톡 하고 터질 듯 껍질이 쉽게 벗겨지는데 또 어떤 것은 손톱이 상하도록 들이밀어도 좀처럼 속살을 안 보여주는 엄청난 놈도 있다. 그래도 귤은 이야기를 나누며 직접 까먹어야 제 맛이며 또 그것이 귤을 먹는 재미다. 누가 까준 귤을 먹을라치면 미안한 마음까지 들을뿐더러 추억을 뺏는 동심 파괴의 짓이다. 절대 귤껍질을 까주지 마라.
지금 귤 택배 박스를 내려놓자마자 아내와 얼른 귤 한 개를 꺼내어 먹어 본다. 이번귤은 껍질 까기도 쉽고 달다. 아내의 흡족한 미소는 잘 선택했다는 무언의 말이다. 기왕 뜯은 것 아예 아내와 퍼질러 앉아 귤을 맛나게 까먹다 보니 어릴 적 겨울철 안방에 앉아 누나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귤 까먹거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어릴 적 추억이 슬며시 밀려 들어와 미소가 절로 난다.
어라, 가만히 보니 아내와 나는 귤 먹는 방식이 다르다. 아내는 귤을 까면서 흰 속살을 생선가시 발라내듯 하나하나 다 뜯어 내고서야 먹는다. 나는 흰 속살 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덥석 덥석 잘도 먹는다. 아내 말로는 어려서 장모님 깨서 하얀 속살을 다 뜯어내주며 건네주던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아마 미국애 사는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것 같다. 귤의 맛을 대한 평가도 다르다. 아내는 달콤한 귤을 좋아하고 나는 시큼한 귤, 달콤한 귤 상관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내가 어릴 때 막 자란듯한 느낌도 든다. 어쨌든 귤이 뭐라고 달다고, 시다고 웃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하며 한겨울을 행복하게 한다.
보통 각 지역 특산품은 그곳 지역민들의 선호에 따라 진정한 원조의 맛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사람들은 어떤 맛, 어떤 형태의 귤을 좋아할까 파란 귤, 주황색귤, 얇은 껍질, 딱딱한 껍질, 새콤 귤, 달콤 귤.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제주도 지인 집에 가서 며칠 묵은 적이 있는데 그 집 강아지는 귤을 던져주면 신기하게 혼자 잘도 까서 먹어 사진을 찍어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생활이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며 귤 때문에 생긴 휴일저녁 여유로운 상상에 행복해졌다. 더욱이 여행 유튜브에 푹 빠진 아내와 언제 일지 모를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