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시야를 놔주고 날카로운 한 두 개 시선만 쫓아 다니며 사사건건 따져 다투다 끝내 상처받아 자존심 대결로 막장으로 넘어간다. 어디서 많이 본듯 하지 않은가 대세에 큰 문제가 없다면 굳이 넘어가 줄 거면 따지듯 파고드는 세상보다 알면서도 지긋이 속아주는 여유 있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때론 모른 척해줘도 된다.
오래전 군대 있을 때 일이다.
나는 수도방위사 방포단으로 김포공항에서 근무하였기에 주야장천 하늘을 보며 경계를 선다. 밤하늘의 별자리도 이때 많이 알게 되었고 지나가는 차 이름도, 비행기 이름도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일부러 암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주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단순한 경계가 일상인 어느 날 경계 근무를 막 나서는데 갑자기 진지를 방문하신 포대장님이
‘원병장 총번이 뭐야?’
‘넵 총번은 어쩌고 저쩌고입니다’
‘아주 훌륭해 저렇게 다들 알고 있어야 하는 거야 ‘
이 칭찬은 빌딩을 넘어 근처 진지 모두에 퍼져 각자 총번을 암기하느라 난리가 났었다. 사실 방포단은 대공포를 위주로 다루는 곳이다 보니 총을 만지는 일이 별로 없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총번까지 알고 있겠는가?
사실 나도 총번을 모른다. 소위 짬밥에 의해 그저 나오는 대로 외쳤을 뿐인데 그것을 넘겨받아주시면서 칭찬까지 해주신 것이다. 총에 대한 경각심을 알려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셨던 포대장님께서 던진 질문이고 답이 맞던 안 맞던 긍정의 힘을 이용하신 현명한 대처였다.
그런데 이런 일이 살다 보면 집에서든 회사 에서든 자주 있다.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하는데 사실 그 질문의 의도는 따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의 꼬투리에 잡혀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그래서 사는데, 일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것을 슬며시 넘어가 주어 진정한 본질의 의미를 향하여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용납이 안될 때도 있겠지만 큰 시야로 작은 시선들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알면서도 넘어가주는 아량을 말한다.
에피소드 1.
출장을 다녀온 김 과장이 연차 결재서류를 가지고 들어온다. 집에 일이 생겨서 휴가를 내겠다는 것이다.
'무슨 일 있어?'
아내가 아프다고 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기분 좋게 사인을 했다.
분명 아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본인이 출장 전에 말을 하고 다녔던 가족여행이 하필 출장이 연기되면서 복귀와 맞아떨어져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일 마무리를 하게 되는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해할 것 이기에 모른 척 넘어가며 슬며시 봉투하나를 건네주었다.
에피소드 2.
작년 아버님의 눈 수술을 하시게 되어 여러 번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모신적이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연로하시어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하신다. 이번에도 한참 양양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 동네 사람들이 말하는데 내린천 휴게소가 좋다고 하더라 한번 보고 싶구나’
‘ 내린천 휴게소 나도 보고 싶었어요 잘되었네요’
곧장 휴게소로 내 달린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바쁜데 휴게소를 왜 또 들르냐고 쿡쿡 찌른다.
화장실을 다녀오신 아버님은 별다른 구경도 없이 곧장 차에 올라타시며 가자고 하신다.
살면서 이런 일이 왜 없었겠는가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면 굳이 따져야만 되겠는가
더러는 하얀 거짓말을 아량으로 품어주며 넉넉히 여유 있게 응원을 해주는 하루가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