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얼리, ‘속임수의 미학’으로 투자 유치
인공지능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진실을 믿지 않을 때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클루얼리(Cluely)는 등장하였다. 이 스타트업은 ‘속이는 것을 돕기 위한’ 인공지능 도우미를 개발해, 최근 약 208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하였다. 그들이 내건 슬로건은 “모든 것을 속여라.” — 기술적 명료함보다 도덕적 충격이 먼저 다가오는 문장이다.
창립자 로이 리와 팀은 면접, 시험, 데이트, 영업 상황 등 현실의 수많은 장면에서 AI가 사용자를 도와 ‘속임수’를 구사할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는 실시간 음성과 비디오 분석을 통해 사용자에게 조언을 제공하며, 도덕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용자 경험을 제안한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기술보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7명의 팀원은 모두 엔지니어가 아닌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SNS 팔로워 수가 기술력보다 더 큰 투자 유치 요소였다고 자임한다. 결국 이 회사는 ‘속이는 AI’를 만든 것이 아니라 ‘속이는 이야기를 팔 수 있는 AI’를 만든 셈이다.
기술은 언제나 중립적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클루얼리의 사례는 그 중립성이 얼마나 쉽게 해체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들은 기술의 목적이 ‘도움’이 아니라 ‘기만’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랑처럼 활용한다. 이는 윤리적 AI 개발이라는 세계적 합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기술적 진보가 반드시 선을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근본적 명제를 증명하는 사례로 남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전략적으로 논란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반복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이트에서 사기를 치는 방법을 소개하고, 스트리퍼 채용을 농담처럼 언급하며, 와이콤비네이터 행사에서 경찰 출동을 불러일으키는 등, 모든 콘텐츠가 '혼란'을 중심에 둔다.
이 모든 전략은 단 하나의 목표를 중심으로 정렬된다. 바로 “관심”이다. 로이 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관심”이라고 단언하며, ‘브레인 로트(Brain-rot) 마케팅’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방식이라 주장했다. 이 전략은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 기술 윤리 그 자체를 ‘소비 가능한 엔터테인먼트’로 전락시키고 있다.
결국 클루얼리는 기술적 설계와 윤리적 통제를 ‘파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이는 기술의 진정한 영향력이 성능이 아닌 서사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AI는 도구이다. 그러나 이 도구가 가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진실을 말할 의무’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클루얼리는 이 간극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윤리적 경계 바깥에서 AI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되는 근본 질문은 명확하다. AI는 반드시 정직해야 하는가? 혹은, 정직하지 않은 AI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가? 이 질문은 단순히 하나의 스타트업이 유발한 도덕적 논란을 넘어서, 기술 문명의 핵심 윤리를 되묻는 것이다.
AI는 점점 더 인간의 사고, 판단, 감정에 개입하고 있다. 이 AI가 허위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자의 기만을 돕는 역할을 할 경우, 그것은 기술의 타락인가, 인간 욕망의 반영인가? 기술은 그 자체로 죄가 없지만, 인간의 목적에 의해 충분히 죄를 구성할 수 있다.
앤드리슨 호로비츠와 같은 대형 VC가 이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한 이유도, 기술의 윤리성보다 주목도와 확산 가능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관심’은 이제 ‘도덕’을 능가하는 가장 강력한 투자 지표가 된 것이다.
결국, 클루얼리는 단순한 스타트업이 아니라, AI 시대의 윤리적 진공지대를 실험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이 실험이 성공할수록,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는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물음이야말로, 기술이 진보할수록 더 분명하게 제기되어야 할 인간의 사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