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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팹의 역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질주와 좌초

by AI러 이채문

1. ‘힘’의 분산과 ‘능력’의 한계— 중국 반도체 산업의 확장과 과잉


중국이 추진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은 단순한 산업 육성 정책을 넘어,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된 ‘국력 집중의 실험장’이었다. 반도체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였고, 7나노 로직 칩, 3D 낸드, DRAM 등에서 중국 내 일부 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미처 작동하지 못한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었고, 외형적 팽창 속에 내재된 불균형이 구조화되고 있었다.


‘힘’이라는 개념은 어떤 작용이 현실에 구체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능력’은 그 잠재가 현실화될 수 있는 조건과 방향성이 내포된 개념이다. 중국이 보유한 ‘반도체 산업화의 힘’은 외형적으로는 팹(fab) 확충이라는 양적 성과로 나타났지만, 이 힘이 실제 ‘능력’으로 구체화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충족되지 못하였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중국에는 44개의 웨이퍼 팹이 운영 중이며, 300mm 팹만 해도 25곳에 이른다. 여기에 신규 팹 32곳이 추가로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좀비 팹(zombie fab)’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처럼, 실제 가동되지 못한 채 외형만 존재하는 공장이 늘고 있다. 약 12건의 고위험 프로젝트가 좌초되었으며, 이로 인한 투자 손실만 최소 500억 달러에서 최대 1,000억 달러에 달한다는 추정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투자 실패의 문제를 넘어, ‘능력 없는 힘’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즉, 방향성과 실행 역량이 결여된 ‘힘’은 자원의 낭비이자, 오히려 산업 생태계의 신뢰를 해치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1. ‘힘’의 분산과 ‘능력’의 한계 — 중국 반도체 산업의 확장과 과잉 - visual selection.png



2. 철학적 전도(顚倒): 능력 없는 목표의 폭주


능력(能力)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구체적 조건과 실행 경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반면, 중국의 일부 반도체 기업들은 7나노, 14나노 같은 첨단 공정을 목표로 삼았음에도 그 목표를 가능케 할 인력, 장비, 기술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결여된 채 사업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능력 없는 목표’는 오히려 산업 전체의 신뢰도를 훼손하는 파괴적 요소로 작동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우한 훙신반도체와 취안신 집적회로가 있다. 이들 기업은 TSMC 출신 고위 엔지니어 수백 명을 스카우트하고, 수조 원대의 자금을 유치했지만, 실질적인 기술 자산의 확보에는 실패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좌초되었고, 일부 경영진은 실종되거나 체포되었으며, 지방정부 관계자들까지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능력’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숫자나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 구조와 상호작용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능력은 단순한 힘의 총합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의 통합된 에너지’이다. 기술, 인력, 제도, 국제정세 등 다양한 요소들이 통합되어야 비로소 하나의 산업이 실질적 능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역시 이 능력의 형성에 결정적 장애물로 작용하였다. 10나노 이하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는 대부분 네덜란드(ASML), 일본, 미국에서 제조되며, 미국은 이러한 장비의 중국 수출을 차단함으로써 기술 격차를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다. 미중 간 갈등 심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등도 중국 반도체 산업에 예측 불가능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1. ‘힘’의 분산과 ‘능력’의 한계 — 중국 반도체 산업의 확장과 과잉 - visual selection (1).png



3. 결론: ‘능력’이라는 말은 결국 중복된 표현이다


이 모든 사례들을 통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능력’이라는 단어는 ‘힘’과 구분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방향성을 지닌 힘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동일한 속성을 공유한다. 특히 반도체 산업과 같은 기술 집약형 산업에서, ‘능력’은 단지 자본의 규모가 아니라, 기술적 이해, 정책적 통합성, 글로벌 맥락의 조율 능력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능력’이라는 표현은 힘이 존재함을 전제하는 동시에, 그것이 작용 가능한 방향과 조건을 포함한 개념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마주한 ‘좀비 팹’ 문제는, 힘의 과잉과 능력의 결여라는 전형적 사례를 보여주는 상징적 결과이다. 이는 곧 ‘능력’이라는 말이 단지 ‘방향성 있는 힘’이라는 점에서 개념의 중복일 뿐이라는 철학적 결론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인식은 기술 산업을 넘어, 모든 국가 전략에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이다. 국가적 수준에서 아무리 ‘힘’을 집중한다 해도, 그것이 방향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효율이 아니라 파국이다. 즉, ‘능력’은 단순히 더 많은 자원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 맺기와 실행 가능한 구조화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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