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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삼각자 May 03. 2024

기록의 끝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5월 3일. (금)

엊저녁에 아무래도 곧 떠나실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결국 오늘 새벽에 소천하셨다.

갑자기 호흡곤란이 심해져 1인실로 옮겨 가족들과 임종을 하려 했으나 먼저 돌아가신 거다.

새벽에 병원이름이 뜬 전화를 받고 침대에서 내려올 때 잠시 휘청했지만 장례식장 세팅을 다 해놓고서 빈 접객실에 앉아있으니 맘이 차분해진다.

아직 몇 단계의 울음보 터질 일이 남긴 했지만 말이다.


원래 암진단을 받고 항암을 위해 입원하셨던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다시 오셨다.

암진단을 받은 지 36일 만이고 호스피스에 입원하신 지 5일째 되는 날 돌아가신 것이다.

처음에 이 글을 시작할 때 말기 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짧게 끝날지 모르는’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올해부터 보험급여 적용이 되어 기대를 걸고 있었던 티그리소, 렉라자 한 알도 못써보고, 키트루다 한 방도 못 맞아보신 채 이전에 작성해 놓았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대로 조용히, 그리고 평안히 인생에서 퇴장하셨다.


이제 3일의 장례식과 화장, 그리고 빨리 잡아두길 잘 한 수목장을 치르면 이 과정도 끝이 난다.

돌아보면 그 짧은 기간 동안 아버지와 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에 쌓여있던 찌꺼기 같은 것들도 치워버렸고, 아버지가 안 계신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된다.

다음에는 어떤 글을 브런치에 다시 써갈지 모르겠지만 매일 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애를 썼다.

좋은 글, 다듬어진 글은 아니지만 매일 글을 남기면서 흩어져있던 마음을 다시 모았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이나마 더 괜찮은 어른이 되어 가겠지.


짧게 끝난 암투병 관찰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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