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삼각자 May 14. 2024

일상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짧게 끝날지도 모르는 암투병 관찰기 그 후

아버지의 장례도 끝나고 사망신고도 마쳤다.

더 이상 회사가 아무렇게나 굴러가게 놔둘 수도 없고 일을 접을 게 아닌 이상 출근을 해야 한다.


출근 첫날. 오랜만에 업무미팅을 하고 갑작스럽게 부고가 전해진 대학선배의 본인상을 조문하러 이천까지 갔다 왔다.

며칠 전 아버지의 장례에 부의도 보내주셨는데 그 사이 돌아가신 선배의 영정 앞에 서니 또 한 번 마음이 요동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너무 뻔해 보이지만 이런 물음을 할 수밖에 없고 피조물인 사람이 애초에 명확한 답을 못 내놓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살면서 익히 들었던 뭔가 내 마음에 들고, 수긍할 만한 명확한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발견하고 싶어서 헤매고 있다.

흡사 돌아가는 원판에 다트를 던져 노리고 있던 하나의 아이템에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 양 안될걸 알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기웃거리고 있는 아이처럼.


아버지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별로 울지를 않았다.

그래서 저기 밑바닥 어딘가에 있을 슬픔을 억지로 길어 올리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무 덤덤해서 실감이 안 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다 언제 혼자 운전하고 어딘가 가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 눈물 짜는 음악이라도 나오면 갓길에 차를 대놓고 펑펑 울고 있을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마곡을 지날 때, 신정동을 지날 때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안 그럴 수도 있다.)


전부터 마음이 많이 힘들 때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만을 기다린다. 잠을 자야 생각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잠이 들면 꿈을 너무 많이 꾸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하나도 안 잔 것 같은 날도 있었다.

장례를 치른 지 아직 1주일 밖에 안 돼서 그런 건지 며칠째 꿈속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버지 장례에 조문을 오고 부의를 보내준 분들께 개인적으로 인사를 다 드렸다.

대부분 몸과 맘을 잘 추스르고 일상으로 잘 복귀하라는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원래처럼 생각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하던 대로 한다는 의미라면 나는 그 일상으로, 이전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그렇게 살지 않기로 아버지랑 약속했다.

내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사랑해요.”가 아니라 “미안해요.”였다.

그 ‘따위’로 살아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와이프에게 미안하고, 딸에게 미안한데 아직 이전의 그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다.


엎어져 있을 건가. 일어나라.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걸어라.

매거진의 이전글 기록의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