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예술의 개념
예술의 어려움을 이야기 앞서 나는 우리나라의 예술(혹은 미술)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개념이 뒤죽박죽이며, 교과과정의 미술 교육은 유명한 작가와 작품을 외우거나 미술사조와 작품을 대조시키는 수준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미술에 대한 통념은 예술은 감성적이며 창의적이라고 게다가 깊은 철학을 갖는다는 막연한 언어적 정의로 귀결된다. 하지만 정작 예술의 어떤 부분이 감성적이고 또 어느 부분이 창의적이며 왜 철학적인지 구분을 못한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예술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한다면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예술이라는 개념 즉, Art는 서구 문화에서 넘어온 개념이다. 그래서 그 개념적 정의를 역사적 단어의 정의 안에서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Art는 라틴어 Ars에서 나왔고 Ars는 그리스어 Techne에서 파생되었다. Techne라는 말에서 보듯 Technic이라는 말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즉, 그리스어 Techne는 건축술, 항해술과 같은 기술적 부분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이렇듯 초기 예술의 개념은 기술이나 역사의 서술을 하는(문맹률이 높았던 관계로) 기록적 수단이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감에 대한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는 따로 존재했다. 바로 Musike이다. 그리스어 Musike는 연극, 시, 음악 등 영감을 받아 이루어지는 행위들이었으며 이것들은 무형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기술적 의미의 Techne와 영감적 의미의 Musike는 시작이 달랐다. 사실 기술적 의미의 예술은 마네, 모네를 대표로 하는 인상주의까지 이어진다. 3D의 입체를 2D의 평면에 옮기는 방법에 집중하여, 명암법, 투시법 같은 방식을 발전시키거나 실재를 재현하는 방식에 집중해왔다.
허나 1826년 조세프 니세프스 니에포르(Joseph Nicephore Niepce)의 최초 사진 이 후, 1889년 코닥이 필름의 보급화에 성공하면서 재현에 대한 기술적 역할이 줄어들게 되었다. 1870년대의 인상주의는 이 시점과 맞닿으며 또 다른 회화의 영역을 보려 한다. 빛 자체에 대한 연구였다. 사실 인상주의는 모더니즘에 속하지 않으나 그 시작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 후 시작되는 모더니즘은 더 이상 대상의 재현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을 찾는데 주력했다.
입체파, 야수파, 미래파 등 자신들만의 표현과 새로움을 찾는 시기였던 모더니즘은 뒤샹이라는 예술가가 던진 질문(남자 소변기를 전시장에 전시함으로써)을 시작으로 또 다른 답을 찾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시대로 넘어오게 된다. 모더니즘이 자신만의 표현, 그리고 새로움을 찾는 시기였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왜 우리는 예술을 하는가라는 좀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접근하게 된다.
“진실하며 권위 있는 예술가는 예술의 진실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반면, 본능에 의지하는 무법상태의 예술가는 자연스러움만을 쫓는다. 전자는 예술의 정점에 이르며, 후자는 바닥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다시 말해 인상주의까지가 재현의 시기였다면 모더니즘은 새로움을 찾는 시기였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은 왜 이것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으로 넘어오는 시기였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기술의 시대(인상주의까지)에서 감성의 시대(모더니즘)를 거쳐 철학의 시대(포스트 모더니즘)로 넘어온 것이다. 물론 지금은 컨템포러리 아트 혹은 동시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이 사조들이 뒤섞여 있다.
이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는 예술은 단순히 이미지로 파악하는 수준에 머문다. 즉, 잘그렸냐 못그렸냐 색감이 좋다 나쁘다 정도의 수준에서 머문다는 것이다.
이것은 책을 사서 표지 디자인과 제목만으로 책 내용을 다 읽었다고 하는 내용과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볼 때, 하나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기술로 볼지, 감성으로 볼지, 철학으로 볼지 생각하면서 본다면 지금보다는 더 즐거운 예술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일반적으로 예술 자체를 어려워 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