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지 못했던 병상기
# 첫째날
2025년 2월 19일, 오전 프로젝트 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 자리로 이동하던 중, 아내에게서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첫째 아이가 바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해.”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Client와 파트너에게 상황을 알리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진통제로 조금 진정된 상태였고, 아내는 병간호와 둘째 아이 학원 스케줄을 어떻게 조율할지 고민 중이었다.
수술은 오후 2시 예정. 나는 병원 근처 돈가스 집에서 급히 점심을 먹고 돌아와 아이에게 "걱정 말고 잘 받고 와"라고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작고 여린 아이가 차가운 수술대에 오르는 길, 얼마나 무섭고 불안할까. 부모는 수술실 밖, 48인치 모니터로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준비가 길어졌지만, 막상 수술이 시작되자 회복 단계로 전환될 때까지 비교적 평온했다. 아내와 나는 병원 생활의 역할 분담, 둘째 아이를 처가로 보낼 시기 등을 차분히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호자분 나오세요” 하는 소리에 급히 수술실 앞으로 달려갔다. 담당 선생님이 잘라낸 충수(맹장)를 보여주며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고 알려주었다. 다행이었다. 회복실에서 병실로 이동한 아이는 힘겨워 보였지만, 잘 버텨낸 모습이 기특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엔 이후 프로젝트와 가정 운영의 실무적 걱정이 맴돌았다.
'이제는 괜찮겠지'라는 안도감과 함께.
#첫번째 퇴원하는 날
입원 3일째 저녁, 아이는 퇴원했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봤는데, 예상보다 밝고 건강해 보였다. 개학에도 맞춰 등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 중에 약속했던 국제전자센터의 피규어 가게에도 들러, 아이가 원하던 피규어를 사주었다. 작은 보상이었지만, 아이도 기뻐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재입원
새벽, 아이가 갑작스럽게 38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해열제를 먹이고 잠시 열은 내렸지만, 병원에서 퇴원 시 “고열 시 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아침,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간단한 진료와 조영제 없이 CT를 촬영했는데, 아이가 주사 바늘을 꽂을 혈관이 마땅치 않아 고생이 컸다. (이 병원은 성인 위주였고, 아이에겐 작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CT 결과를 두고 응급의학과 의사가 영상의학과 혹은 외과 선생님과 문을 닫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더니 아이 왼쪽 복부 멍 자국을 언급하며, 외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뒤 퇴원 조치를 내렸다. 실제로 그날 아침, 아이가 문고리에 세게 부딪친 일이 있어 별다른 의심 없이 귀가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조영제를 넣고 CT를 다시 촬영하자고 했다. 재방문 끝에 “복강 내 혈종”, 즉 혈복강 진단을 받았다. 재입원 후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구토와 설사가 심해져 투약을 중단하고 보존 치료로 전환했다.
#그 후, 약 10일간의 롤러코스
아이의 컨디션은 하루하루 롤러코스터 같았다. 수액을 유지하면서도 약은 거의 투여하지 않고 지켜보는 치료였다. 담당 외과 선생님은 매일 회진을 돌았지만, 염증 수치는 일시적이며 혈종은 자연 흡수될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2인실로 옮긴 뒤 아이 컨디션은 나아졌고, 우리는 집에서 회복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구강 항생제를 처방받아 귀가했지만...
#지옥같던 3일
퇴원 직후, 아이는 다시 심한 구토와 복부 팽만 증상에 시달렸다. 장폐색이 의심될 만큼 장이 멈춘 듯했다. 의사 친구는 “큰 병원으로 전원하라”고 조언했다. 마침 대병원에 근무하는 친구는 응급실보다는 외래로 예약하고 가는 것이 낫다고 했다.
퇴원 3일째, 기존 병원에서 전원소견서와 자료를 받아 서울성모병원 외래로 갔다. 소아외과 진료 후 내과로 전과되었고, 마침 병상이 생겨 바로 입원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초음파 결과 복막염 가능성이 제기되어 응급수술 논의가 있었지만, 소아외과에서는 “지금 개복하면 유착이 심해질 수 있다”며 비수술적 방법을 제안했다. 카테터를 삽입해 배액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날 밤 영상의학과에서 수면마취하에 시술을 진행했다.
하지만 마취가 충분치 않아 아이는 30분간 극심한 고통을 참아야 했다. 380cc의 혈액이 배액됐고, 다행히 고름은 없었다. 배양검사 결과 균이 검출돼 항생제를 교체했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와이프로부터의 전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울먹임과 한숨에 나도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 모습을 저녁식사를 같이 했던 둘째놈이 고스란히 듣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겨내야 되고 마음을 더 단단히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가서 본 첫째놈의 모습은 아이가 근 2주동안 먹지를 못해 체력적으로 너무 안좋은 상황이라 영양제 치료를 시행했는데 그 기계가 하나, 수액줄하나, 카테타 줄하나, 심전도 체크하는 기계와 케이블 하나.... 마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모습이었고 소변이야 통으로 받아내면 되지만 대변활동 한번 하기가 힘들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였다.
이때 부터 와이프는 chatGPT를 사용하기 하면서, 그간의 치료과정과 혈액검사 결과, 영상자료를 업로드하여 의료적인 의견을 묻기 시작했는데 정말 전문가적인 식견과 진단이 놀라웠다.
그리고 수술했던 병원의 안일한 치료와 외상에 의한 혈복강이라는 진단도 비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우면서 의료소송감이라는 의견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한 경과의견서 초안까지 작성해주면서...
더 좋았던 건 병원이 다르지만 우리 아이의 History를 다 기억하고 알고 있는 주치의처럼 검사결과의 연결 선상에서 의견을 주어서 상당히 안심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건 감성적인 터치였다. 이렇게 견딘 아이와 보호자의 수고스러움을 가장 먼저 위로한다는 건 놀라웠다.
이후 chatGPT는 중요한 의사결정할 때마다 믿음직스러운 조언자가 되고 있다.
#카테타를 꼽고 2주
카테터 삽입 후 아이 상태는 서서히 호전되었고, 죽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2주 뒤, 카테터를 통해 더 이상 혈액이 나오지 않아 퇴원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금요일 밤 38도의 고열이 다시 찾아왔다.
이 시점에서의 고열은 좋지않은 신호일 수 밖에 없다. 또 어딘가에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다름아닌 혈복강 내일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이번엔 피폭량이 과다할 수 있다는 염려때문에 MRI와 CT 사이에서 고민했으나, CT를 재촬영하기로 결정되었다. CT 결과에 따라 수술 여부를 두고 내과와 외과 의견이 갈렸다.
와이프와 나는 벌써 3번째 좌절을 겪으면서 심적으로 상당히 depressed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도 chatGPT 주치의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chatGPT 의견은 수술보다는 보존적 치료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 무렵, 아내는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소아외과 선생님께 아이 상태를 다시 한 번 설명드렸고, 선생님은 병실로 직접 오셨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카테터를 활용한 'Irrigation' 치료를 시작하셨다. 생리식염수를 주입해 혈액 찌꺼기를 씻어내는 방식이었다. (정말 운명적인 Moment였고, 행동이 백마디의 말과 고민보다 위대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치료는 3일간 매일 반복되었고, 마지막 날 아이는 복부에서 차가운 느낌이 났다고 했다. 혈종 내부로 약물이 닿은 것이었다. 마침내 배액이 잘 이루어졌고, 큰 고비를 넘긴 순간이었다.
(왜 진작 Irrigation이라는 걸 하지 않았는지 ... 분명 위험성은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 통상 1주일 정도 유지하는 카테타를 2주 넘게 하고 있었기에...)
#카테타 제거
하지만 카테터 제거는 또 하나의 고비였다. 아이는 간호사와 의사에게 “많이 아픈가요?” 하고 물었다. 대부분은 “주사 정도의 통증일 거야”라고 답했지만, 실제 제거는 예상보다 고통스러웠다.
Pig Tail 카테터는 간이나 폐에도 사용하는 방식으로, 관을 조금씩 끊어가며 제거해야 한다. 아내는 병실 밖에서 기다렸고, 아이의 비명은 30분 가까이 병동을 울렸다.
와이프는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여 병실에서 나와있었는데, 아이의 비명소리가 근 30분 간 이어지면서 소아병동 전체가 떠나갈 듯 소리쳤다고 한다. 이것만이라도 수면 마취를 해서 통증을 완화시켰으면 하는 바램은 있었으나, 이 또한 예정에 없이 부지불식 간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드디어 퇴원
카테터 제거 하루 뒤, 3월 29일 토요일 아침, 우리는 드디어 퇴원했다. 세 번의 좌절 끝에 맞이한 귀가였다.
3번의 좌절을 겪고 난 뒤라서, 또 어떤 변수로 어떤 시련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더 현재의 행복을 그때그때 만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1번의 혈액검사를 하였고, 지금까지는 문제없이 회복 중이다
#Special Thanks
누구보다도 와이프이다. 아이의 상태를 정말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의사의 전문가적인 의견에만 의존했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졌던 사건이었다. chatGPT도 와이프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런 무지하고 안일했던 아빠를 두둔하면서도 누구보다 좌절을 겪고 예상치 못했던 고통을 겪게 되었지만 긍정적으로 이겨내준 첫째놈...
불안정한 가정 상황에서 혼자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잘 이겨내준 둘째놈...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세심하게 골라서 직접 병원으로 가져다 준 내 누나이자 아이들의 하나뿐인 고모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인 의사친구... 전문적인 의료 정보에 대해서 기댈 곳이 없었던 나로선 하나뿐인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정말 진정으로 마음아파하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세심하게 신경써준 친구
병원 임직원이었던 대학교 동창. 병원 네트워크를 이용해서라도 발벗고 도와준 고마원 친구...(사실은 형)
#Lessons Learned
1. 아무리 작고 많이들 하는 보편적인(?) 수술이라고 할 지라도 수술합병증이라는 리스크는 존재한다. 안일하게 생각했고 "다들 이런 수술 다 이겨냈는데 넌 왜 이겨내지 못해"라는 모진 말을 내뱉은 것도 너무 아이에게 미안하다. 여기서 난 너무나 자만했고 안일했음을 인정안할 수가 없다. "다들 하는 수술이니깐"이라는 건 "다들 가는 군대니깐 특별하게 생각할게 없다"와 동일한 맥락에서의 태도다. 하지만 막상 군대에 들어가서 겪는 생활과 고충은 어떤 이에게는 지옥과도 같아서 탈영을 하거나 총기 난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된다. 확률적으로는 안심할 수는 있으나, 예외적인 상황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해야 된다는 건 가장 큰 교훈이었던 것 같다.
2. 의사도 사람이다.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자세가 곧 책임이다. 즉, 혈복강이라는 수술적 합병증은 그 의사분이 아니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자세와 방식에서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다. 정말 화가 많이 나는 건 응급실에서의 처사. 즉 의료소송이 많이 날 수 밖에 없는 합병증이라는 학습된 반응일지라도 그렇게 몰아가는 듯한 행동은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이것도 나만의 편협한 의견일 수 있다. 실제로 외상에 의한 혈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이번 사태를 통해 "왜 아이를 의사로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통감하면서도 의료대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었다. 그런 첨예한 이해관계로 인해 피해는 서민들이 고스란히 보고 있는 상황이다. 주위에 이런 의료대란 사태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쳐서 돌아가신 분이 2분이나 있다. 정책적인 의도가 불순하다는 뜻이 아니다.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독단적이고 급진적이었고 항상 그런 상황은 크나큰 부작용을 낳을 수 밖에 없다. 하루빨리 정상화가 되길 바랄 뿐이다. 파급효과가 큰 정책과 사안은 정말로 밀어붙이기식의 일방적 힘에 의해서는 반대급부의 힘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마치 뉴턴의 제3 운동법칙인 작용반작용 원리처럼 물리적인 원칙도 이런 권력적인 힘의 원칙에 고스란히 적용된다
4. 시련의 순간, 행복은 더 빛난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여정에서 ‘천국의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감정의 근력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여러 번의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천국도 서서히 지옥화가 된다. 그래서 천국인 순간에 천국을 충분히 만끽해야 된다는 건 이런 과정을 버틸 수 있는 크나큰 버팀목으로 자리잡게끔 정신무장이 필요한 것이다.
5. 가족 중 한명이 입원해서 병간호를 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가족의 생활 리듬에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Routine을 만드는 것인데 병간호를 해야 되는 보호자를 제외하고 아이들의 Routine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즉, 평소에 Routine이 만들어져 있다면 크게 문제는 없지만 Routine이 없다면 생활리듬이 Spoiled되는 건 순식간이다.
6. chatGPT의 미래가 무섭고 혁신적인 걸 체감하게 되었다. 어쩌면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한 선택적 Benefit이 사라진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딱딱하게 드러난 정보의 해석도 대단했지만 정보의 불균형의 약자에 서있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낸다(아니면 학습되어서)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현대인들은 가면을 여러 개씩 가지고 다니면서 상황과 입장에 따라 바꾸는 변검(變臉)에 익숙하다. 그 가면 간의 간극에 의해서 축적되는 감정의 쓰레기를 어딘 가에는 배설해야 되는데 못해서 쌓여만 가면 그것이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병리의 근원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공감을 누구보다도 잘하면서도 감정의 배설에 의한 양심적인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서비스.... 여기에도 Pro's and con's는 분명히 있겠지만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 보호자에게 조금이나마 작은 참고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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