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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Jul 28. 2021

4차 대유행 앞의 단상

지난달에는 마스크를 더 사지 않아도 될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단 며칠 만에 역대 최다 확진자 수를 갱신했고, 씁쓸하게 마스크를 추가 주문했다. 전철 한 칸에서 수백 명과 불안을 호흡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에는 카페마다 의자가 테이블 위에 얹혀있었다. 단골 카페가 걱정되어 원두를 한 묶음씩 사서 들어가곤 했다. 내겐 터널이지만 그들에겐 심연일 테니. 그나마 짐이 적어 견딜만한 소시민의 작은 위로였다. 그때에는 계절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한국 사회(또는 정부)에서는 불확실한 다수의 희생보다 확실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하게, 적어도 훨씬 가볍게 여겨지는 듯하다. 지난 1년간 자영업자와 문화체육인, 의료진 등 특정 집단들의 기약 없는 희생을 지켜보았을 때 이를 부인하기 어렵다. 확실한 소수의 땀과 눈물로 다수의 일상이 지켜졌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심연에 머물고 있다.


  사람은 질병뿐만 아니라 가난과 폭력, 절망과 외로움으로도 죽는다. 지난 1년간 전자의 확산은 막았을지 몰라도, 후자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확산했다. 거리에는 불안 속에 다행인 사람들과 사선을 저울질하며 불안도 사치인 사람들이 공존한다.


  여의도에서는 재난지원금과 방역단계를 가지고 이런저런 다툼이 있는 듯하다. 그 앞에서는 당장 내일이 위태로운 이들이 살려달라며 외치고 있다. 10여 년 전, 고등학교 사회 과목에서 배운 국가의 역할을 떠올린다. 그때 배운 역할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지금은 더 이상 그때의 국가가 아닌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카페에서 원두를 사는 일조차 아직 살만한 이의 기만으로 느껴져 눈을 피하게 되었다. 매일 체육관 하나를 채우는 확진자 수와 관련 소식들을 보며 여러 가지 답답한 감정이 차오른다. 한심한 세태에 한 마디도 얹지 못하는 한 소시민은 광화문을 지나며 시선이 머물렀던 한 시구를 마음에 담을 뿐이다.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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