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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Jul 28. 2021

안희정을 동경한 적이 있다

욕망의 확산에 대하여

한 때, 안희정을 동경한 적이 있다. 철학을 전공한 그의 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논해질 때면 그로 인해 우리 사회가 곧 무르익기를 기대했다. 우연한 기회로 도청에서 그를 만나 악수하고 맞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이름을 물어 대답했을 때에는 영락없는 '성덕'의 심정이었다.


  나의 그 동경이 폭력의 연료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랬다. 고발에 이어 사법적 판단과 조치를 지켜보고 최근 피해자의 저서를 접하기까지 그의 비행을 차마 남의 일로 여기며 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그 순간이 바로 얼마 전까지 벌어진 실망의 사건들의 첫 단추였으리라.




  바른 언행에도 일종의 총량이 있는 것일까. 고귀한 가치를 말하는 인물이 정작 그 가치와 무관하게 행동하거나 역행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정치인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친 이들 중에서도 드물지 않았다.


  신념에는 말이 필요 없는 것인지, 그러나 말이 없으면 행동도 결국 사화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들이 맞물려 소음을 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언행일치의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두려웠다.




  자연세계에서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이 법칙을 가장 잘 따르는 존재는 바로 인간이 아닐까. 가만히 놔두면 빠르게 흐트러진다. 정돈된 가치를 지키려면 자연스러운 욕망에 저항해야 한다.


  고고한 백조의 부지런한 다리처럼, 지배욕, 소유욕, 과시욕 등에 끝없이 저항하고 몸부림쳐야 한다. 매일 자신을 의심하고 발을 구르지 않으면 그럴듯한 말에 취해 나태해진다. 힘껏 거스르지 않으면 가라앉는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고른 단어를 모아 발화하는 행위는 화자를 스스로 이미 그런 사람이라 믿게 만드는, 움직임을 잊게 하는 일종의 마약이 되는 듯하다.


  바르고 정의로운 말들로 자신을 치장만 하면 그 말이 닿은 이들이 칭송해준다. 그 평가를 받아들이고 곧 자신이라 믿는 것은 자신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쉽고 편안하다. 그렇게 저항의 의무는 흘려보내고 그럴듯한 말만 남아 침잠해 가며 결국 실망과 배신감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잘것없는 한 명의 이상주의자로서 꿈같은 가치를 삼키며 현실을 견디고 있다.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고민하고 즐겁게 나누지만, 정작 나 자신이 그와 멀어지며 누군가의 실망으로 기억될 것이 두렵다.


  그 두려움으로 오늘도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아니며 언제든 잘못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새긴다. 이 또한 말뿐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이 글을 다시 읽는 순간에라도 부끄러움을 느껴 돌이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바른말이 삶을 숨기지 않고, 바른 삶이 말로 나타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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