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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Oct 02. 2021

제발 그만 싸워~ 이러다 다 죽어~

이젠 선악과의 저주를 벗어날 때

  대선이 다가오니 뉴스가 양복 입은 이들로 가득 찼다. 빨강과 파랑의 추종자들이 서로를 멸절하려 말을 쏟고, 이익과 사상으로 뭉친 온갖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고 있다.


  피부를 맞댄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남녀와 노소가 제각기 찢어져 천하제일 혐오 대회를 벌인다. 이젠 같은 집단으로 묶이지 않는 이들에게 온갖 멸칭을 붙이며 최소한의 소통조차 거부하고 있다. 지난 세기의 뿔 달린 공산주의자의 환영이 시대를 타고 더 잘게, 더 넓게 스며들었다.


   마스크의 필터가 호흡뿐만 아니라 공존의 사유마저 걸러낸 듯하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이들 모두가 중세 십자군의 일원인 양 스스로를 선으로 칭하고 있다. 상대편의 인간들을 자신보다 지적, 도덕적으로 열등한 인격으로 생각한다. 그저 무찌르고 굴복시켜야 할 악의 무리쯤으로 인식한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창세기에서 타락의 문을 여는 '선악과'는 인간이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는 열매다. 어렸을 때에는 선악을 아는 일이 어떻게 죄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오늘날의 지옥도를 보고 있자니 이제야 어렴풋이 윤곽이 잡힌다.


  선악에는 이해와 존중이 없다. 선한 쪽이 악한 쪽을 무찌르고 짓밟고 승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선과 악의 세계는 그런 곳이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완전히 선한 것'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랜 현인들의 가르침이다. 스스로를 선하다고 믿거나 말하는 사람일수록 악하기 쉽다는 것을 온갖 경험과 뉴스 기사들로도 배웠다. 그러나 자신만은 절대적으로 선할 것이라는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우리는 이제 선악보다 음양을 떠올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양 속에 음이 있으며, 음 속에도 양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에도 악이 있고 악에도 선이 있다.


  맹목적인 동질은 우리를 해친다. 나치즘, 파시즘, 꼰대리즘, 대깨X(X는 변수) 등 인간이 만든 온갖 괴물들은 모두 동질성의 늪에서 태어난다. 이 괴물들은 다양성의 축복을 알지 못한 채, 자해하며 사멸할 뿐이다.




  다양을 지향하는 첫걸음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딱 한 가지다. 우리 사회에 이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 한 걸음이면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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