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의 두번째 겨울
팬대믹과 흐릿한 존재의 경계에 대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다. 입가에 찬 물방울은 여전히 차갑고 축축하다. 북서풍과 함께 뉴스를 타고 온 소식들에 마음이 움츠러든다. 이미 좁아진 생활반경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발이 닿는 모든 곳에 남기는 흔적이 이젠 익숙하다. 국가에서 매일 발표하는 이런저런 숫자를 위해 익명성을 포기했다. 더 이상 주의를 끌지 못하는 그 숫자만큼이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선이 무뎌졌다. 나는 나 혼자서 존재하지 못하게 되었다.
기묘한 일은, 나를 드러내고픈 이들에게는 오히려 내 모습이 감추어진다는 것이다.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는 감정과 표현의 절반을 채어간다. 눈은 웃고 입은 울고 있는지, 아닌 척하는 미묘한 미소가 번지는지, 목이 메는지, 입이 마르는지. 평생을 능숙하게 다뤄온 표정들이 정교한 언어를 타지 않고는 툭툭 끊겨 땅에 떨어진다.
지극한 사적 관계에서는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아득한 지점에서는 천망(天網)에 걸린 듯 붙잡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는 내가 흐려지며, 원치 않는 곳에서 뚜렷해진다.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나의 의지와 손에서 멀어졌다. 팬대믹의 시대는 선이 굵고 단단한 자아조차 이렇게, 순식간에 흩어 버리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듯하다.
지난 두 해를 통해 뉴노멀, 포스트 팬대믹의 모습을 대략 엿볼 수 있었다.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는 동시에 감시와 통제가 당연해졌다. 다양성이 설파되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몇 가지 큰 덩어리로 엉겨 붙는듯하다.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글을 잡았다. 온종일 휘감기는 남들의 말과 글에 질식해가는 존재를 깨우기에 이만한 불씨가 없기 때문이다. 사고를 깨우고 잃어가는 나의 경계를 지키며, 세계로 확장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새로운 세상에 들고 갈 새로운 삶의 방식은 이것으로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