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연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든 Jan 13. 2022

디즈니처럼, 픽사처럼

소년처럼 해맑고 현자처럼 그윽히


  디즈니와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실사 영화로는 따라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상상력, 배우의 연기가 아닌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 황홀경에 초대하는 OST들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날 잡고 떠들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나는 조악한 스토리에 얄팍한 교훈을 끼워 파는 영화를 저주하곤 하는데, 디즈니와 픽사는 그 반대의 길을 가는데 능숙한 것이다. 이들은 전체이용가 수준의 이야기를 통해 현인의 의식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 전환을 선물한 작품은 디즈니의 '주먹왕 랄프(2012)'다.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은 성인을 머뭇거리게 하는 제목의 진입장벽이다. 그러나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레트로 게임, 지난 디즈니의 레퍼런스들을 적당히 뒤틀어 성인을 위한 동화로 펴냈다. 악역으로 태어나 생긴 선천적 열등감을 대하는 랄프의 태도는 졸업을 앞두고 자기 의심에 빠진 시기를 한껏 안아주었다.


  '인사이드 아웃(2015)'은 학부 시절, 교육심리학의 참고자료로 접했다. 그만큼 성장기의 복잡한 심리묘사에 탁월했고, 이를 대하는 방법도 세련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는 표현을 이보다 탁월하게 담아낸 영상물을 본 적이 없다.


  ‘소울(2020)’은 '왜 사는가?' 하는 거대한 물음에 대한 픽사의 대답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 성품을 결정하는 영혼의 세계(The Great Before)를 배경으로 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를 중심으로 눈부신 성취보다 중요한 삶 자체의 즐거움을 연주하며 마음의 현을 울린다.


  새 시대의 탈무드가 있다면 이들이 만들 것이다. 개봉하는 작품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고민과 해답을 제시하는 정교한 접근법이 놀랍다. 이제 예쁜 커버와 마케팅 경쟁만 남은 자기 계발서, 힐링 에세이보다 몇 배는 더 전달력이 강하다.



  오만가지의 사상이 전쟁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에 서 있다.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 하는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 그 전달법마저 원시적이다. 큰 소리가 곧 옳은 소리인, 국밥집에서 들리는 아저씨들의 인생론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럴듯한 이념을 가져와서 모르면 공부를 해오라거나, 배우지 못했다거나, 당신은 그렇게 살라거나 하는 등의 태도를 보고 있자면, 이들이 정말 세상을 변화시킬 마음이 있는 것인지, 단지 사상적 우월감에 머물고 싶을 뿐인지 의심하게 된다. 한 때 세상을 한 걸음 옮기던 생각들이 비루한 자아에게 쥐어진 칼이 되었다.

  디즈니와 픽사가 빚어내는 맑은 제안들은 마음의 필터를 가볍게 통과해 깊은 곳에 담긴다. 함부로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부드럽게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목소리들이 이를 배우면 좋겠다. 악으로 깡으로 지르지 않고, 옳다고 믿는 것을 잔잔하게 살며 보여주길 바라본다.


소년처럼 해맑게
현자처럼 그윽히


                                                       '박노해의 걷는 독서' 중

매거진의 이전글 새 시대의 두번째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