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바다라고 불리는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 어린 물고기가 늙은 물고기에게 물었다. - 바다? 그건 지금 네가 있는 곳이야. 여기가 바다야! - 에잉, 여기는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 영화 <소울(2020)> 중.
10여 년 전, 무릎팍도사에서 여행작가로 유명해진 한비야가 7급 공무원이 꿈이라는 청년의 등짝을 때렸다는 예화를 말했다. 당시의 기사를 검색해보니, '감동의 물결' 등의 수식어가 주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청년의 시절에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죄악시되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현대사회에는 '꿈', 또는 '자아실현'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있다고 느낀다. 인간으로 태어난 태어난 이상 성취로, 쾌락으로, 책임으로, 이외의 무수히 많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거대한 질문과 마주하며 삶을 잇는다. 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답으로 선망되는 것은, 낭만적인 꿈과 그 실현이다.
요즘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너도나도 이런 가치를 좇다 보니, 이제는 같은 수준의 성취를 위해 필요한 노력의 수준이 터무니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젠 죽을힘을 다해야 겨우 평범해질 수 있다. 인생을 태우는 수준의 노력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왜 사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숨이 붙어 있는 생명 중 오직 인간만 던질 수 있는 특권이자, 피할 수 없는 저주이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죽음을 극복한 삶을 살기도 하며,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살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 청년들이 겪는 고통의 큰 부분은, 사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해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낭만적 꿈의 성취이다. 요즈음엔 교회 등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날로 어려워지는 이 성취의 기준은, 많은 이들이 삶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했다.
바라건대, 삶을 조금만 가볍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허무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의미부여를 멈춰보는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한 유기체에게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목적이 있다는 허상을 치우고, 삶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기쁨을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픽사의 영화 <소울(2020)>은 태어나지 않은 영혼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혼 세계의 링컨, 간디, 테레사도 가르치는 데 실패한 주인공은 보잘것없는 피자 한 조각, 길가의 낙엽으로 인해 생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그저 어느날 주어진 육체와 시간을, 알 수 없는 이가 강제한 기준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가까이에서 이미 흘러넘치는 삶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감히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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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잔치, 1562
가나의 혼인잔치는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이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이의 혼인잔치가 한창일 때에,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진다. 유대지방의 혼인잔치는 보통 일주일간 열리는데, 이 잔치 중에 술이 바닥난 것이다.
잔치에 참석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예수는 하인들이 가져온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인다. 포도주는 하객들이 맛본 그 어떤 포도주보다 맛이 좋았다고 한다.
혼인잔치가 아직 한창인데 떨어진 포도주 따위가 문제겠는가? 신랑과 신부가, 나와 세상이 결합하는 인생 잔치에 고작 술이 없다고 기쁘지 않겠는가? 또 마땅히 그 기쁨이 채워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