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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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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Feb 03. 2022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들다면

PESM이라는 말이 있다. ‘정신적 과잉 활동인’의 약자로, 정신적 감각이 예민하고 생각의 타래가 끊이지 않아 고통을 겪는 사람을 지칭한다. 의학적으로 정식 등록된 질병은 아니지만, PESM의 정의와 특징을 살펴보면 “이거 내 얘기잖아” 내지는 “나만 이런 게 아니었어”라고 반응할 사람이 속속 나타날 것이다. 감각적인 자극이 지나쳐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거나, 너무 많은 생각이 터져 나와 취사선택이 어렵거나, 생각과 말의 흐름이 어긋나 말을 빠르게 하거나 더듬는 등의 판단기준이 있다.


   짐작하듯이, 이 글을 쓰는 나도 이에 해당하는 부류라고 느낀다. 기상 알람을 누르는 순간부터 다시 맞추는 순간까지 머릿속이 깨끗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찾기 어렵다. 출퇴근길 눈에 담기는 인파와 표지들이 버거워 휴대폰을 바라보면 이제 깜빡이는 글자와 영상들이 버겁다. 책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이 과하게 느껴지고, 눈을 감고 음악을 틀어도 오래지 않아 투닥거리는 소음으로 느껴진다. 요즘에는 아무 음악도 나오지 않는 이어폰에 노이즈 캔슬링의 도움을 받아 달갑지도 않은 잠을 애써 붙잡는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온갖 자극에 반응하는 예민함은 수동성의 극한이다. 스스로 정신과 마음을 쏟아낼 방향을 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삶의 주체성을 지키는 데에 적지 않은 해악을 끼친다. 불필요한 세상의 모든 잡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정말 집중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모두 빨아들인다.


   이 가득 찬 소음을 끄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무엇이든 단순한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중량을 들며 신체의 운동에 몰입하거나, 필사하며 손의 움직임에 몰입하거나, 글을 쓰며 문장에 몰입하거나, 하다못해 걸음걸이와 호흡과 신경의 자극에 몰입한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정신의 과잉 활동으로 숨이 가빠올 때면 이 사소한 몰입의 행위로 힘들 빼며 상당한 안정을 얻고 있다.


   요즘은 이 단순한 몰입 중 가장 바람직한 유형을 발견했다. 소중한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그의 표정과 말투, 몸짓, 감정과 생각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편견으로 이루어진 감각의 필터를 제거하며 그의 온전한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다. 나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그의 세계를 탐색하며 이해하는 동시에 나의 세계에 동화시키려는 욕망을 죽이는 것이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이 단순하고도 고도의 몰입을 요하는 행위는 지식으로 세상을 통제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차근차근 줄여나간다. 조율없이 울리던 제각각의 음계들이 지휘봉을 만난듯 일순간 잠잠해진다. 동시에 자기 비움이라는 신에게 향하는 길의 초입에 들어서게 한다. <피로사회>의 저자는 이를 창조적 탈진이라고 표현했다. 욕망의 빈자리에서 비로소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세상, 그리고 나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온갖 소음들에서 주체성을 지키는 능동적 삶의 태도가 된다.


   어느 하나에 시선을 멈추기 어려운 세상이다. 수많은 정보와 자극이 쉴 새 없이 밀려들어 눈과 귀, 손가락이 바쁘고 불안하다. 잠시 눈을 감고 안갯속에서 헤매는 마음의 초점을 나의 신체로, 의식으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움직여본다. 이제 한결 숨이 트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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