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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02. 2022

김정주, <안녕, 신앙생활> 리뷰

신앙서를 구입하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아무래도 '신학'이 붙어있는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그곳은 종교적 언어의 바다와 같아서, 구태여 찾지 않아도 설교와 나눔, 간증이 주위에 흘러넘쳤다. 거기에 말을 보태는 책들은 과하게 느껴지고 부담스러웠다.


   '인생, 또는 신앙에는 정답이 있다. 누구는 그 정답을 잘 골라서 성공했다. 누구는 그러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이제 알았다.' 당연한 말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선물이나 숙제로 주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이런 책들을 여간해선 손에 쥐지 않았다. 김정주 작가는 그의 전작 <파전행전>, <안녕, 기독교>에서 그랬듯 이 권태로움을 능숙하게 벗어난다.


   교회 언어에 이미 푹 절여진 마음에 신선한 향기를 뿜었다. 벽돌 같은 신학 책처럼 어렵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것이 딱 적당한 공감과 위로, 생각거리를 건넸다.


   짧은 이야기와 생각들이 옴니버스식으로 놓여있다. 아홉 개의 주제를 가지고 엮여있는 단편들은 수도원에서 한붓에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 현실의 길바닥에서 쓰인 것이었다. 은혜롭고 경건한 곳에서는 감히 꺼낼 수 없었던 은밀한 의문들로 각각의 꼭지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어린아이도 고개를 끄덕일 따뜻한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혹여 불경하게 비추어질까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불안의 시간을 보낼 때마다 요동치던 생각과 마음들이 편안하게 달래 진다.


   읽는 내내 나와 같은 고민을 겪은 속 깊은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살다 보면 누구나 겪었을 법 한, 그러나 누구에게도 쉽지 않았을 삶의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갔다. 책을 덮을 시점에는 할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다음을 기약하는 작별의 순간이 겹쳐졌다.


   삶이 바빠지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뒷전으로 밀린다. 밀려난 마음이 퇴적되는 곳에는 허무가 자란다. 허무가 삶을 위협할 때 펼쳐볼 책이 이제 한 권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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