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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Jul 09. 2022

당연한 말들이 밉다

   아침마다 지하철을 채운 인간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 고단한 표정을 지은 채 일터로 나가는가. 어떤 이유로 생계를 부지하고 삶을 지속하는가. 나는 왜 이들 사이에서 어깨를 늘어뜨린 채 서고 걷는 것일까.


   다소 유난스럽지만, 간혹 이런 질문이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치곤 한다.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라도 된 양 무의미와 부조리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간의 삶도 그저 유전자의 생존 활동의 일환이며, 우리가 밟고 있는 땅조차 우주 속 먼지임을 보이지 않았는가.


   준비 없이 삶으로 내던져진 존재는 그 이유를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다.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는지, 나아가 답이 실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삶과 세계의 의미에 대한 문답 자체가 인간을 미물과 구별되게 하며 존재의 기반을 단단하게 한다. 실존주의 전통이 말한 바이며, 내가 글을 쓰고자 애쓰는 이유다.


   이 맥락에서 유독 쓰게 느껴지는 지점이 하나 있다면, 문답의 과정을 생략한 채 삶과 세계를 이해한 양 으스대는 이들이 세상의 주류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도 통용되는 ‘당연한 말’만을 거느린다. 인간은 존엄하다, 신은 위대하다, 선함을 추구해라, 행복해라, 성실해라, 사랑해라, 믿고 신앙해라.


   이 당연한 말들은 보기에는 좋으나 어떤 이의 삶의 맥락에도 걸치지 못하여 쉽게 흩어진다. 액자에 박제되어 잃어버린 생명력을 가장한다. 그리고 삶의 고통에 지친 많은 이들이 이 액자 앞에서 “진리에 대한 불안을 너무 쉽게 해소하려 한다(폴 틸리히).”


   당연한 말들이 밉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음에도 모든 것을 가진체하며 온갖 악마, 꼰대, 나르시스트, 위선자, 광신도, 소시민을 양산하는 말들이 밉다. 미세먼지처럼 도처에 깔린 해로운 말들을 해체하고 낱낱이 드러내 보이고 싶다.


   인간은 존엄한가? 신은 위대한가? 선함이 무엇인가? 행복은? 성실은? 사랑은 도대체 무엇이며 신앙은 또 무엇인가? 앞으로 쓰게 될 글은 이처럼 피곤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이 될 것 같다. 사실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문답의 과정이 내 삶의 존재 양식 중 일부가 되기를 바라며 이 마음을 지우지 않고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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