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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Jul 23. 2022

이제 인생은 'B와 R 사이의 C'다

선택 과잉의 시대에 대하여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관용구가 되어버린 이 문장은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것이다. 실존하는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와 의무, 그리고 책임이 뒤따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사르트르가 세상을 떠난 1980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를 예측한 '제3의 물결'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탄생과 죽음의 사이는 셀 수 없이 많고 또 하찮은 선택으로 벌어졌다. 이젠 "B(Baskin)와 R(Robbins) 사이의 C"가 더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31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같이 사소하고 감각적인 것들이 삶의 중심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선택 과잉의 시대다. 간편식의 대명사였던 샌드위치도 이젠 6가지 빵, 3가지 치즈, 12가지 소스를 골라야 한다. 퇴근 후 소파에 앉으면 통신사 전단지가 260개 채널을 홍보하고 있으며, 넷플릭스는 70,000개의 영상을 제공하고, 6~7개의 업체가 그와 경쟁한다.


   작년엔 선택의 범주가 아니었던 것들도 올해는 선택이 되었다. 휴식마저 선택을 요구하며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볼지 끝이 없는 카탈로그를 제공받는다. 복권도 자동추첨만 구입하는 나로서는,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 소스를 능숙하게 선택하는 이들이 부럽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정작 중요한 것들에서는 선택을 위탁하는 듯하다. 진로와 직업, 연애와 결혼, 앎과 배움, 정치와 사회관 등 삶의 형태를 말이다. 시대가 익어갈수록 감각은 더 열심히, 의식은 더 게을리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닐까.


   SNS와 서점, 방송이 '코딩', '돈 공부'를 띄우자 온 사람이 코딩과 돈 공부에 뛰어들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자신과 상대의 가치를 판단한다. 적정한 삶의 기준은 30평 아파트, 월 500만 원 이상의 소득, 2000cc급 중형차, 1억 원 이상의 예금, 연 1회 이상의 해외여행으로 딱 정해졌다. 유튜브가 몇 가지 뉴스 영상을 추천해주니 딱 두 가지 생각을 뽐내게 되었고, 내가 아니기만 하면 누군가 찍어주는 대로 쉽게 욕하고, 배척하고, 혐오한다.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있다.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선택항목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하면 선택의 의욕이 떨어지고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다.


   세상에 감각이 가득 차서 의식이 밖으로 밀려난 것인지, 의식이 날로 버거워져 쉬운 감각에 몰린 것인지 인과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방향이든 보이는 현상은 같다. 오감의 자극은 날로 다양해지며, 사고의 폭은 날로 좁아진다.


   뭐든 효율적이지 않은 것을 도태시키는 세상에서, 뇌의 용량만은 이토록 편향되게 사용하는 것이 덕목인 것이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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