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평택의 한 빵 공장에서 20대 노동자 A씨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 기계에 끼어 숨졌다. 하필이면 또래인, 3년이라는 얼추 비슷한 사회생활 경력을 가진 청년의 죽음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속속 드러난 정황은 분노를 넘어선 어떤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사고 발생 직후, 고용노동부에서는 소스 배합 기계 9대 중 안전장치가 없는 7대(사고 기계 포함)에 대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사건 다음 날, 공장이 나머지 2대를 정상 가동하자 추가로 작업 정지를 명령했다. 오후였다.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수 시간 동안 동료 직원들은 A씨의 선혈이 남아있는 장소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어야 했다. 문제의 기계는 현장보존을 위해 그 자리에 흰 천으로 덮여 구분되었을 뿐이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에는 같은 공장에서 다른 노동자 B씨의 손이 끼이는 사고가 있었다. 기계를 해체해 20분 만에 손을 빼낸 B씨는 병원이 아닌 공장 내 보건실로 보내졌고, 담당자로부터 훈계와 함께 ‘파견직이니 알아서 병원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그 말대로 스스로 택시를 불러 병원에 갔다. 충격적인 사고와 그보다 더 충격적인 정황에 최근 본 드라마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너 사탄 들렸어?"
두더지 잡기
산업 재해 예방에 통계적으로 적용되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에 의하면, 어떤 대형 사고가 1건 발생했다면 그와 관련된 29건의 경미 사고와 300건의 징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추어 B씨와 같은 사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훨씬 많은 사고가 숨겨져 있음이 짐작된다.
사실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에는 평택항의 화물 컨테이너에서도 아르바이트생이 깔려 죽었고, 재작년에는 지자체의 구조물을 지키려다 공무원이 죽었다. 그 경과는 위의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사람보다 이윤, 절차와 책임소재를 중요시하는 전반적인 풍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민간과 공공을 가리지 않고 퍼져있다. 강력한 처벌, 불매운동으로 한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된다고 해도, 이미 뿌리내린 곳곳의 문제는 뽑히지 않을 것이다. 두더지 잡기처럼 말이다.
교육적 탐구 : 사유하는 힘
나는 이러한 인간 소외, 비인간화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사유하는 힘, 사유력(思惟力)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 개념에 동의한다. 나치에 동조한 많은 시민과 같이, 사유하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악을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정도는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사유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며, 여기에 교육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교육 현실에서 사유력은 고려 대상이 아닌듯하다. 우리의 교육은 오랫동안 출세를 위한 입시지옥의 역류 현상이 만든 인간에 대한 무철학으로 일관해왔다. 생애 초기 정규 교육 기간 내내 정답을 골라내는 기술을 학습한 탓에, 스스로 사유하는 힘은 매우 허약해졌다. 한국 학생들의 국제적인 학업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학습 흥미도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또한 성인의 수리력과 문해력은 학생에 비해 크게 떨어지며, 이 낙폭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입시만을 위한 공부에 몰두했으니, 그 목표를 지나면 책 따위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한두 번 언급된 것이 아니다. 이미 십수 차례의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가장 최근인 2015,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자주적이며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고 더불어 사는 사람을 인간상으로 추구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길러내는 교육보다 골라내는 선발에 관심이 많은 이상, 극적인 변화는 요원하다. 자주성, 창의력, 시민성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몇 가지 교과를 추가했으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행정 편의, 이해관계의 관성에 갇히지 않은 비상한 개혁이 아니고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른 교육이 산재를 줄이고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허항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사회 전체가 경주마처럼 코 앞만 보다가 놓치게 된 여러 가치를 돌려놓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한국의 교육은 어떤 긍정적인 힘도 인출할 수 없는 파산상태에 가깝다. 교육을 사회의 우선 과제로 판단한다면, 공적 자원 투입의 규모를 늘리고 어떠한 개혁의 시도도 않는 것이 오히려 모순된다. 무엇보다 개혁에 대한 어떤 반대의 이유를 들더라도 현재의 교육이 낳고 있는 부조리에 비하면 가벼운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교육개혁에 관련해서는 이념적이고 지지부진한 논의만을 반복하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