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현실을 이해했으며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에 쉽게 유혹되곤 한다. 그 유혹 중 최근 가장 유행하는 것은 아마도 ‘MZ 세대’라는 용어일 것이다. 최규하가 대통령이던 198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과 한일월드컵의 함성이 울리던 2000년대 초에 태어난 사람을 한 번에 일컫는 그 용어 말이다.
세대론은 기본적으로 지칭되는 세대 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88만원 세대, 밀레니얼 세대, 2030, 이대남과 이대녀 등 세대적 특성을 논하는 용어는 대체로 선행 세대에 의한 타자화의 결과물이다. 요새는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86세대(60년대생)도 그들이 30대이던 시절, 윗세대 정치인들에 의해 이름 붙여졌다.
이처럼 세대론은 기성세대에 의해 타자화된 정체성이다. 그런 탓에, 세대의 구성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재하다. 같은 20대라도 가정환경과 소득수준, 교육수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의 특성이 나타난다. 그런 이들을 모두 ‘MZ’라고 뭉뚱그리니 '명품 소비를 즐기는 MZ 세대'와 'MZ 세대의 절약 챌린지'라던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갓생(God-生, 부지런한)' 같이 모순된 헤드라인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세대론이 즐겨 사용되는 것은, 어렵고 다양한 문제에는 직면하지 않고 편리하게 이해감과 통제감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직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신입직원이 나타나도, 불공정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청년이 나타나도 “요새 MZ 세대는 그렇다며?”하고 넘어간다.
한쪽에서는 ‘플렉스(FLEX, 재력이나 귀중품 등을 과시하는 행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즐기고 다른 쪽에서는 ‘짠테크(짠돌이+재테크)’에 열중하는 양극화된 모습이 보여도 "MZ 세대의 특성"이라며 더 이상의 고민과 조치를 단념한다. 이름 붙이는 것으로 그들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진실(truth)을 언어에 의해 총체화 될 수 없는 것으로 봤다. 그에게 언어의 틀은 아무리 정교한 개념을 잡아내더라도 공집합(∅)과 같은 허점이 상존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계의 실체는 언어의 틀에 가둘 수 없다.
물론 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최선의 틀이며, 바디우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언어라는 체로 걸러진 일부를 가지고 세상 전부를 이해한 양 으스대는 태도를 경계한 것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끊임없이 지식에 구멍을 내고 새로운 언어의 틀을 짜내는 충실함이 요구된다.
특히나, 다수의 삶에 책임감을 가진 공직자와 언론은 더욱이 진실을 아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의자에 앉아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놓고 이해한 ‘척’ 하기보다, 실체에 가까워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쉽게 단정 짓고 규정하는 일은 세계를 흐리게 한다. 진실에 대한 충실함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