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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Jan 09. 2023

잠과 죽음에 대하여


못 다 산 하루가 아쉬워 잠 앞에서 머뭇대던 밤, 문득 잠드는 것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겹쳐보는 허상에 빠져들었다.


   만약, 잠과 깸이란 것이 태어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령 스무 살쯤에 처음으로 잠을 경험하게 된다면 말이다. 우리는 잠을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눈을 감고, 감각을 끄고, 의식을 멈추고, 세상은 그대로 존재할 것이나 나만은 어둠에 격리된다.


  이것이야말로 매일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이 아닐까. 기억이 형성되지 않았을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한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이들이 잠들고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나 또한 깨어날 것을 확신하고 순순히 몸을 내줄 수 있을까.


   눈을 감았다가도 다시 뜨면 다음 날이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다 쓰지 못한 기력이 남아 뒤척이는 몸짓이 의식 깊은 곳의 두려움에 기인한 것일지 생각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하루를 잘 사는 일은 인생을 잘 사는 일과 나란히 놓인다.


   잘 사는 인생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감당하기엔 근력이 충분하지 않아 이쯤에서 멈춘다. 다만 아쉽지 않은 하루가 어떤 하루인지는 수천의 하루를 보내며 어렴풋이 느낀 바가 있기에, 그 또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요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 가는 빛에 대해
(인터스텔라(2014) 中, Dylan M. Thomas의 시)


#이든

#생각털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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