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드(sous-vide)’라는 조리법이 있다. 재료를 비닐에 진공상태(sous-vide)로 밀봉해 미지근한 물로 오랫동안 데우는 방식이다. ‘미지근한 물’은 55℃에서 70℃ 정도이며, ‘오랫동안’은 2시간에서 72시간을 뜻한다.
처음 수비드 조리 영상을 봤을 때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고기는 모름지기 강한 불로 순식간에 지져서 익히는 것인데, 긴 시간도 시간이며 물도 안 끓는 온도로 고기가 익는다니 말이다. 그러나 시도해본 이들이 반복해서 말하길 '재료의 향이 살아있고 수분이 가득해 부드러움의 차원이 다르며, 무엇보다 타거나 덜 익는 조리의 실패가 없다'고 한다.
문득 생각하니 수비드는 글쓰기와 닮았다. 강렬한 영감에 휩싸여 신들린 듯, 밤을 새워 써내는 글을 동경할 때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혼신'의 글이며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진짜는 맘에 드는 글이 나오던 나오지 않던, 끊임없는 씀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는 중이다.
가끔가다 주제를 잡아 한 편의 글을 써내는 것은 익숙하다. 그러나 때때로 열정이 과해 태우거나 깊이가 없어 설익는다. 그러나 수비드처럼 당장 미지근하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그럼에도 꾸준하여 고된 '매일 쓰기'는 존재의 중심까지 충분히 고아내어 훌륭한 요리를 예상한 맛 그대로 실패 없이 내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오른다. 하루도 빠짐없이 5시에 일어나 원고지 20장을 채운 뒤 10km 조깅을 뛰는, 그렇게 글을 써서 마감 3일 전에 원고를 넘기는, 그야말로 '진짜 광기'의 꾸준함을 지닌 하루키는 수비드 글쓰기의 표본이 아닐까.
매일 아침 1시간을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묘하게 성의 없어 보이는 흰 바탕에 함초롱바탕체가 아직은 영 불편하다. 그럼에도 충분한 시간이 나의 중심부까지 열을 전달해 훌륭한 글쟁이가 되리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