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다.
“닷새 전에는 몇 가지 약을 처방해 드렸죠. 종류가 많아서 먹기 힘들었을 텐데, 증상은 좀 어떠셨나요.”
“네, 며칠 먹으니 가슴의 답답함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다행이네요. 흉통에는 심장과 폐를 중심으로 여러 기전이 있는데, 지난주 초진에서 설명한 증상을 토대로 가장 의심되는 기전에 관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은 그 결과인데, 심장의 운동과 혈액에는 걱정할만한 요인이 없습니다. 다행인 일입니다.”
내과의는 나긋한 어투로 자신의 추리를 풀어주었다. 의원의 간판으로 보아 삼성병원에서 배웠을 것이다. 충분한 설명 자료와 시간, 친절을 곁들인 내과적 추론은 탐정을 보는 것 같아 흥미진진했다.
“그렇군요, 그럼 폐 쪽의 문제인가요?”
“유감스럽게도 그러네요. 정확히는 기관지죠. 이제 이쪽을 보시면 폐의 내쉬는 힘이 정상 범위보다 약하게 측정이 됩니다. 기관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되는 데는 흡연과 음주, 고령, 가족력의 작용이 가장 유력한데, 전부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셨죠.”
“네 맞아요.”
“그래서 알레르기성 천식을 의심해 보았고, 그에 따른 진정성 약제를 처방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하시기로 약을 투약한 지난 며칠간 증세가 호전되었다고 하니, 이제 앞선 의심이 합당한 것으로 판단해도 될듯합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천식을 진단받았다. 원인불명의 흉통으로 내과를 방문한 지 일주일 만이다. 그리 기뻐할 만한 결과는 아니지만, 무지 속의 불안보다는 나은 것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마음은 사건의 범인을 요구했다.
“그런데요 선생님, 제가 이제 서른입니다. 이렇게 늦게 천식이 생기기도 하나요. 어릴 때나 걸리는 줄 알았거든요. 지금까지 없었는데, 왜 생긴 걸까요?”
“환자분의 경우 이미 약한 수준의 알레르기를 지니고 있어요. 그건 비염으로 나타났죠. 그런데 평소보다 심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에 노출되면 이런 식으로 증상이 심각해져 호흡기와 관련된 다른 질환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알레르기에 노출될만한 상황이나 환경 변화가 있었나요?”
“딱히 환경이 달라지진 않았는데요, 혹시 요 며칠 심했던 미세먼지도 알레르기를 유발하나요? 그것 말고는 떠오르질 않네요.”
“미세먼지가 전반적으로 건강에 좋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알레르기는 또 다른 문제라 어떤 사람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죠. 환자분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 특별한 증상을 느끼시나요?”
“얼굴이 가렵고, 코가 답답해져요. 저녁에 코를 풀면 피가 납니다. 거의 빠짐없이요.”
“네, 그러면 의심해도 될 것 같네요. 이 자리에서 별도의 검사 없이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려다 도로 집어넣었다. 바보 같은 질문에 당연한 답이 나올 테니 말이다. 심증의 결론은 미세먼지다. 50㎍/m³ 를 넘으면 ‘나쁨’이 표시되는데, 지난 며칠은 400㎍/m³ 를 가뿐히 넘어 날씨 앱도 해골을 표시하며 ‘절대 나가지 말라’는 문구를 띄웠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나 나올 법한 가까운 짙은 시야가 이어졌다. 이 정도면 의사가 말한 ‘특별한 환경 변화’에 해당하겠다.
미세먼지를 피하려면 보건용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 실외 활동을 삼가는 것 정도가 현실적인 방법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대관령 너머로, 또는 그보다 멀리 바다를 건너 피신하는 것뿐이다. 개인으로서는 말이다.
한 달 치의 흡입형 호흡기 치료제를 처방받았다. 아니, 형을 선고받았다. 대기가, 지구가 내게 더 이상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 종족의 일원인 것을, 하며 넘기기에는 어째 가슴이 조금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