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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Apr 07. 2024

소통이란 환상이 아닐까

세계의 어긋남 사이에서

사람 사이의 소통이란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묻곤 했다. 각자가 자신의 언어로 말할 뿐인 것을 우연히 비슷한 단어 몇 개를 두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소통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으나, 그것의 본질은 오해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과 개념은 유체와 같이 정형이 없어서 담는 그릇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강아지’를 말하면 진돗개와 삽살개, 차우차우 등을 달리 떠올릴 것이고, ‘푸들’을 말하면 콩이와 초코, 두부 따위를, 콩이를 말해도 밥 먹는 콩이, 산책하는 콩이가 다르고, 친근한 정도에 따라 또 다르다. 실체가 명확한 것들도 이러한데, 단어와 단어를 이어 붙여 허공에 띄워낸 말들이 그대로 전해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인듯하다. 진심이란 그런 것이다.


   돌아보면 살아온 모든 날이 생각의 모양을 잡아 막연한 세상에 전하고자 애쓴 나날이었다. 배가 고프고 똥이 마렵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놀이터에 나가고 싶고 로봇이 가지고 싶다거나, 이사는 가기가 싫고 나는 이 대학에 가고 싶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그대로 전해졌는가 하면 또 아닐 것이다. 진심을 전하는 일과 받는 일에는 모두 큰 노력과 양보가 필요하나, 일정량의 진심은 늘 흘리고 마는 것이다. 전해진 것들보다 땅에 떨어진 진심이 늘 안타깝게 느껴졌다.


   흔히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 하는데, 그대와 나 또한 서로 다른 역사와 언어를 가진 완전히 다른 세계일 테다.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지점은 낭만보다 충돌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사는 까닭은 말의 적확함보다 어울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성장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른 세계에 살며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겠다. 나의 어떤 생각이, 감정의 온도가, 마음의 크기가 다른 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 이해하고자 하는 그 노력에 감사하는 일이 더욱 어른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로 인해 우리의 신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도.


   진심은 어긋나기 쉽다. 그러나 진심을 통역하는 그 양보와 노력이 진심의 실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쌓인 신뢰 속에서 작은 어긋남은 오히려 풍성함을 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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