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한테 좋아하는 계절이 겨울이라고 하면 많이들 이유를 묻는다. 그 이유를 진실되게 설명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다. 왜 그런가 생각하며 걸었다.
겨울은 조용하다.
좁디좁은 옷속 틈새를 찾아 비집고 들어오는 냉기 탓에 내복, 스웨터, 코트, 머플러에 장갑까지 겹겹이 옷을 쌓아 입었다. 통통한 아기처럼 목과 팔다리를 가누기가 불편해져 행동거지가 조심스러워진다.
겨울은 봄이 오기 전 쉬어가는 기간이기에 생명들은 가을에 입었던 무거운 빛깔의 겉옷을 잠시 벗는다. 그들의 앙상하고 추레해진 속살 위로 날카롭게 반짝거리는 눈이불을 소복소복 걷는다. 그렇게 눈구경을 하다가 고개를 올려 초점 없이 아주 먼 어딘가를 향해 눈으로 말을 걸었는데 담청과 회갈빛으로 물든 유화의 질감이 살아있는 듯한 풍경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가만히 서 있었다.
내 옆에서 걷던 친구 하나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 그에게 전해지는 내 목소리의 발성이 보통 때보다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말하는 ‘나'가 문득 낯설게 느껴져 팔에 살짝 소름이 돋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 뒤쪽 어딘가에서 참새 두 마리가 피리처럼 짹짹 재잘대다가 어디인가 해서 그쪽을 홱하고 바라보니 어느새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가 거센 바람에 휩쓸려가는 두 종잇조각처럼 보였다.
청명해진 겨울공기를 훅 들이마셔 머리 뒤쪽까지 청소했다. 먹색의 두툼한 붓으로 규칙 없이 덧칠되어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조차 찾을 수 없게 된 무한의 캔버스를 순수했던 시절로 되돌리기 위해 여태 나는 같은 먹색의 두툼한 붓으로 캔버스에 남겨진 여백을 메꾸려고 했다. 너무나 허무해서 지금 보면 쓴웃음만 짓게 되는 노력이었다. 겨울공기를 두어 번 깊게 담배 피우듯 들이마셨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 작은 계곡의 물처럼 흐르는 흰 페인트를 끼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그려진 스트로크들이 침묵하기를 바랐다. 한숨을 푹 쉬었다. 소리가 사라진 그곳을 시골의 자유가 다시 찾았다.
몸 안부터 세상 바깥까지 A키로 조용하게 공명했다. 하늘엔 어두운 남색의 천이 걸쳐지고 땅의 것들은 온통 텅 비어있는 검은 실루엣이 된 풍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다 오는 해엔 어떤 빛깔의 옷을 입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다시 태어날 준비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