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재산과 채무의 1순위 상속인이 되다.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떠나 보내고 슬픔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채무변제 독촉 통지서>가 날라온다면?
실제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태어났고 원하든 원치 않든 눈을 감을 때까지 이 체제의 굴레 속에서 돈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돈은 양날의 검처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기도 때로는 나락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사치를 부리지 않더라도 당장 먹고 자는 것부터도 돈이 필요하며 큰 병이라도 걸릴 경우 치료를 위해서 상당한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는 저출산 문제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처럼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돈이 갖는 영향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울고 웃는다. 씁쓸하게도 채무가 있는 사람의 죽음 후에는 그 어두운 그림자가 유가족에게까지 드리워진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앞 글에서 언급했듯 아버지의 경우 투자 실패로 인해 심신의 고통과 더불어 자식에게 자신의 병치레와 노후의 부담까지 주고 있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죽음을 맞이했고 상당한 채무를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 누나는 1순위 상속인으로서 아버지의 빚을 대신하여 감당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조차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내가 이 빚을 전부 떠안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두려움에 휩싸였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빚을 변제해야 하는 상속인으로서의 부담감까지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허탈함과 억울함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대한구조법률공단에 무료 법률 상담을 의뢰해 보기도 하고 동사무소에서 진행하는 마을변호사 제도를 이용해 보기도 하고 주변 법조계 지인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며 백방으로 법적 지식을 쌓아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한 줄기의 빛처럼 가혹한 빚의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속인들을 법적으로 구제하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상속포기>와 <상속 한정승인>제도이다. 이 글을 꼼꼼히 읽고 있는 독자라면 나와 아마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쉽게 요약해보았으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상속포기
- 상속인 지위 자체를 포기함으로써 고인의 재산 및 채무를 모두 상속받지 않겠다는 의미
- 고인의 재산보다 채무가 많을 경우
◈ 상속 한정승인
- 상속인 지위는 포기하지 않지만 상속받은 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미
- 고인의 채무보다 재산이 많을 경우 또는 고인의 재산과 채무가 정확히 알기 어려운 경우
※ 사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기한 내에 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상속인으로서 고인의 재산과 채무를 모두 상속받게 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 상속포기를 하면 후순위 상속인에게 채무가 이전된다. 하지만 예상치 않게 후순위 상속인이 채무를 떠안을 수 있고 상속인들 전부가 상속포기를 하려면 친족의 범위가 광범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1순위 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 한정승인을 진행하고 나머지 1순위 상속인들이 상속포기를 하면 후순위 상속인들이 겪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 동사무소에서 고인의 사망신고를 할 때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함께 신청하자. 이 서비스를 통해 고인의 재산과 채무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어 편리하다.
스스로 준비하여 법원에 서류를 제출할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법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깔끔한 일처리를 위해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고 현재 법무사를 통하여 가정법원에 서류를 제출한 상태이다. 법원의 판결까지는 약 3개월이 소요된다고 하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상속 한정승인을, 어머니와 누나는 상속포기를 하였다. 조카와 다른 친지들에게까지 피해를 주지 않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상황이 조금씩은 다를 수 있으니 필자의 케이스를 통해서는 <상속포기>와 <상속 한정승인>의 기본적인 개념 정도만 참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