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신고로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는 주인을 잃었다.
1987년 5월,
아버지는 나의 출생 신고를 하였고
2020년 7월,
나는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하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상황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하나둘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이 주정도가 흐른 어느 날 밤, 갑자기 ‘내일은 꼭 사망신고를 하러 가야겠다.’라는 혼잣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마치 잊고 있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무의식적으로 뱉어낸 그 말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스스로 너무 놀라웠다. 사망이라는 단어가 벌써 이렇게 무감각해진 걸까? 이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망신고는 기한 내에 해야 한다는 친지분 말씀에 우울한 기분마저 들었던 나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받는 순간 진짜 그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이 될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젠 알아서 사망신고를 해야겠다니.
아마도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했던 사람, 나를 낳아 길러준 존재의 마무리를 대신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이렇게까지 다소 과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의사도 아니면서 말이다. 하지만 유족 연금이나 상속 문제 등 앞으로 처리해야 할 행정 절차들이 내 앞에 산적해 있어 사망 신고를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사망 신고는 고인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사망 신고를 해야 하고 시기가 지났을 때는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해두고 있기도 하고. 애도감과 현실감의 간극은 어쩌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겠지.
멍하니 서 있는 내게 동사무소 직원이 마스크를 고쳐 쓰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떤 업무 보러 오셨어요?"
평소의 나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뗐다.
"아.. 그게..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미처 사망 신고를 하러 왔다고 직설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의미는 통했나 보다. 직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몇 가지 서류를 요청했다. 나는 사망진단서 및 가족관계 증명서 등 준비한 서류들과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을 조용히 건넸고 직원은 내가 작성해야 할 서류라며 종이 한 장을 조용히 내 앞으로 내밀었다.
33년 전 아버지는 이곳에서 환희에 차 발그레한 얼굴로 나의 출생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는 게 참 묘하다는 생각에 웃음도 아닌 울음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하고선 사망신고서의 빈칸을 채워나갔다. 몇 분 정도 흘렀을까 직원은 업무 처리가 다 끝났다며 서류들을 다시 돌려주었다. 60여 년의 인생이 몇 분 만에 종결되는 허망하고 씁쓸한 순간.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면서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은 아직 받지 못했다는 내 말에 직원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주민등록증은 이제 반납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는 주인을 잃었다.